[기고]문정인/韓美日 공조 유지한 '自主'돼야

  • 입력 2000년 6월 21일 19시 17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은 한반도의 평화 공존과 민족 통일에 새로운 지평을 여는 역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있는 것이 자칫 한국 미국 일본의 3국 공조체제에 균열을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이런 우려를 전혀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6·15 공동선언’ 가운데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간다’고 명시한 민족자주의 원칙이 그런 우려를 가져오기에 충분하다. 이 원칙은 한미동맹, 한미일 3국 공조, 그리고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를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는 해석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6·15 공동선언’의 기본 입장을 크게 왜곡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공동선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제1항의 자주와 민족공조 원칙에 대한 합의라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측이 지난 50년간 주장해 왔던 ‘반외세’ 조항을 제외시킴으로써 남북한 간의 민족 공조와 주변 4강과의 국제 공조 간에 실질적 조율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도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순기능적 측면에 공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했던 ‘미국’ 문제가 다소간 해소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회담 결과에 대한 미국측 반응은 긍정적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축하 메시지에서 ‘6·15 공동선언’을 “커다란 첫걸음”이라고 환영했다. 대북 경제제재 해제 조치를 19일 발효시킨 것도 이런 미국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더구나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클린턴 대통령은 공동선언 발표 다음날인 16일 전화통화를 갖고 대북 정책에 대한 공조와 지지를 재확인한 바 있다. 이번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한미 공조체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담은 한일 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김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대북 현안인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납치 일본인 문제, 북-일 수교협상 활성화에 대한 북측의 명시적 화답을 받아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모리 요시로(森喜朗)일본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일본의 입장을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부연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진전이라 할 수 있다. 이미 김위원장은 김대통령에게 모리 총리의 수교 의지를 감사히 접수한다고 밝혔다. 북한 중앙통신은 19일 북-일 수교회담 속개를 위한 문호를 개방해 놓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사태 발전으로 보아 이번 정상회담은 북-일 관계 개선에 새로운 촉매 역할을 했다고 평가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남북관계의 역사적 전환이 한미일 3국 공조체제 유지와 상쇄관계를 이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아직도 우려되는 부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사안에 대한 북측의 비협조적 태도는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크게 퇴색시키고 결과적으로 김대중 정부에 커다란 악재로 등장할 수도 있다. 또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건, 그리고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 문제와 관련해 반미 감정이 확산되어 한미 동맹에 균열이 생길 경우에도 현 정부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더구나 남북관계가 크게 개선되어 신뢰구축, 군비축소로 확대 전개될 때 한미 관계는 또 다른 시련에 직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주한미군의 재배치 및 감군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가변적 요소들은 산재해 있다. 이러한 현안들을 슬기롭게 추스르고, 국내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동시에 미국 일본과의 공조체계를 굳건히 하는 것이 이번 정상회담 이후 다루어야 할 중심 과제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문정인(文正仁·연세대 정외과 교수·정상회담 특별수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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