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월드]'둔황學'/古代 '실크로드 문명史' 밝힌다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27분


실로 우연한 발견이었다.

꼭 100년 전인 1900년. 둔황(敦煌)의 막고굴 아래 절 주지를 맡고 있던 왕위안루(王圓祿)는 16호굴을 청소하다 벽 한쪽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두드리자 속이 빈 듯 벽이 울리는 소리가 났던 것. 이상히 여겨 벽을 헐자 수백년간 밀폐된 채 보관돼온 수많은 고서적과 자료들이 쏟아져 나왔다. 17호굴 장경동의 발견이었다.

신라 혜초스님의 인도기행기 ‘왕오천축국전’도 여기서 이렇게 발견됐다. 장경동에서 나온 자료는 모두 5만점. 4세기에서 11세기에 걸쳐 제작된 불경 일반사회문서 자수 비단화 법기 등 다양한 종류였다.

판진스(樊錦詩) 둔황연구원장은 이를 ‘중국과 중앙아시아 고대학술의 바다’라고 소개했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고대역사 지리 종교 정치 민족 언어 예술 등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진기한 자료라는 것이다.

둔황은 한(漢) 당(唐)시대 실크로드의 요지였다. 서역(西域)으로 가는 3개 주요 루트의 출발점으로 동서를 오가는 실크로드 대상(隊商)과 사신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었다.

둔황은 고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인 대월(大月)씨의 땅이었으나 나중에 흉노(匈奴)가 점령했다. 한무제는 흉노를 정벌하고 군(郡)을 설치했고, 그 이래 둔황은 고대의 대외개방도시로 번성했다.

막고굴은 둔황 시가지에서 동남쪽으로 25km 떨어진 작은 오아시스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싼웨이(三危)산을 바라보며 밍사(鳴沙)산 단애에 자리잡고 있다. 앞을 흐르는 작은 하천 다취안(大泉)이 막고굴을 번성시킨 수원이다.

AD 366년 러쭌(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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