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군/참외배꼽]탯줄 매듭 길이와 상처에 달려

  • 입력 2000년 5월 19일 20시 48분


며칠 전 아주 재미있는 세미나를 들었다. 물리학을 전공한 수잔 무어 박사가 관심 있는 분야는 사람의 배꼽. 그날의 주제는 ‘왜 어떤 사람은 참외 배꼽을 갖게 되는가’ 였다. 미국에서도 참외 배꼽은 아이들의 놀림거리이며, 여성들이 배꼽티나 비키니를 꺼리게 만드는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잘 아시다시피, 참외 배꼽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유전적인 영향 같은 거창한 원인이 아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 의사가 탯줄의 매듭을 얼마나 잘 묶어 주는가에 달려있다. 의사가 아기의 탯줄을 자르면 그 자리는 도톰한 매듭 모양의 상처가 된다. 이 상처는 천천히 아물면서 어느 순간 매듭은 떨어져 나가고 우리에게 익숙한 배꼽 모양이 형성된다. 이때 탯줄을 너무 길게 끊어 매듭을 묶으면 참외 배꼽이 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결국 상처가 어떻게 아무느냐, 또 탯줄의 길이를 얼마로 끊어주느냐에 따라 한 사람이 평생 자신 있게 배꼽티를 입고 다닐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여기에 임신과 탈장이라는 후천적인 변수가 더해진다.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되면 함몰된 배꼽이 돌출하여 참외 배꼽이 된다. 한번 돌출한 배꼽이 다시 안 들어가는 경우도 있어서, 참외 배꼽을 가진 어머니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또 탯줄의 폐쇄부전으로 인하여 복부장기가 탈장을 일으켜 튀어나오는 경우도 있다.

수잔의 연구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에 따르면, 언뜻 비슷해 보이는 배꼽 모양을 찬찬히 살펴보면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한다. 그는 매듭의 길이와 상처가 아무는 과정에 의해 어떻게 배꼽의 모양이 형성되는가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했다. 수잔의 컴퓨터 안에는 낯익은 배꼽들이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패턴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아보고자 했다. 세상에 어느 것 하나 우연히 만들어진 ‘모양’은 없다는 것이다.

세미나가 끝난 후 한 학생이 질문을 던졌다. 왜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냐고. 그러자 그는 웃으며 살며시 자신의 배꼽을 보여주었다. 그날 우리는 하루종일 참외의 꼭지를 쏙 빼어 닮은 그의 배꼽에 관해 웃으며 이야기했다.

정재승 박사<예일대 의과대학 연구원>jsjeong@boreas.med.yale.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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