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기호품의 역사'/커피 술이 인간문화에 준 영향은?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기호품의 역사 볼프강 쉬벨부쉬 지음/한마당 펴냄▼

‘설탕과 권력’의 저자인 인류학자 시드니 민츠의 말대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에게나 다른사람에게 내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행위”다.

이 책의 저자 쉬벨부쉬가 관심을 가진 품목들은 더욱 ‘섭취’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두드러지는 것들이다. 커피 초콜릿 브랜디 그리고 담배…. 먹지 않는다고 생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닌 기호품들이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먹는다 혹은 피운다는 것을 통해 노리는 사회적 ‘후광효과’는 더욱 커진다.

커피와 브랜디는 계급적으로 대립되는 기호품으로 발전해 왔다. 17세기부터 애용된 커피는 ‘정신을 말짱하게 하는 음료’이며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수단’으로서 청교도주의자들의 영육(靈肉)을 위한 음료로 선언됐다. 이는 노동과정의 변화와도 맞물려 있었다. 중세적 인간이 대부분 노천에서 일했다면 커피를 애용하는 프로테스탄트, 계급적으로 근대의 주역으로 떠오른 부르주아들은 점점 사무실에서 정신노동을 하게 됐다. 바야흐로 커피는 “자기의 생명이나 건강보다 시간을 절약하려고 밤늦게까지 작업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유익한”(18세기 자연과학자 칼 폰 린네) 효율성의 음료로서 역사적인 약제로 작용하게 된다.

노동자의 술, 브랜디도 나름대로는 효율성의 음료였다. 브랜디의 알코올 함량은 전통적인 맥주의 10배. 지금까지 취하기 위해 필요했던 양과 시간의 10분의 1만 있으면 충분했다. 게다가 브랜디는 증류를 통해 제조되는 화학주라 원료가 되는 식물가격에 영향을 받는 포도주 맥주보다 훨씬 싸게 제조됐다.

도시에는 이미 브랜디를 마실 농촌출신의 노동자 부랑자들이 넘쳐났다. 산업혁명의 종주국 영국의 경우 엔클로저운동으로 대토지소유자들에게 농토를 빼앗긴 농민들이, 뿌리뽑힌 고통을 브랜디로 달랬다. 그 결과 ‘폐하의 가난한 신민들이 부지기수로 죽어나가는’ 재난이 초래됐다.

브랜디는 사회주의자간에 정치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카우츠키는 당내 금주론자들에 대해 “독일의 프롤레타리아들이 만나거나 함께 안건을 토론하려면 술집에 갈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의 정치는 그럴 수 밖에 없다” 며 브랜디를 옹호했다.

저자가 기호품의 역사적 접근을 통해 결론짓는 것은 금기는 오랜 시간의 설왕설래를 통해 이완되기 마련이라는 것. 일례로 최근 하시시와 마리화나가 ‘순한 약물’로 규정된 것을 저자는 제도권 내 영입의 전초단계로 분석한다. 오늘날 도취약물에 대한 금지는 부르주아적 합리성과 자제력이 퇴각하면서 벌이는 마지막 방어전투라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이병련, 한운석 공역. 263쪽. 9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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