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월드]'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중세 대제국을 점령하라"

  • 입력 2000년 5월 14일 19시 29분


사슬처럼 단단히 짜인 어둠이 도시를 덮을 때, 네트워크는 자신의 데모크라시에 취해 비틀거린다. 접속, 연결, 확인. 게임이 시작된다.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나의 분신인 중기병은 아무런 갈등 없이 적의 농부들을 향해 칼을 휘두르고, 나는 마우스 하나로 제국을 박살낸다. 로마몰락 이후 중세까지 13개 문명 흥망성쇠의 운명을 소재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 제국을 건설한다는 카피를 자랑하지만, 게임이 끝난 모니터 위에 펼쳐진 대제국이란 건물의 폐허와 유닛들의 잔해 뿐이다. 여기서 질문 하나. ‘내’가 파괴욕의 화신처럼 보이는가?

▼13개문명 흥망 다룬 시뮬레이션▼

소꿉놀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멩이가 냄비도 되고, 솥도 된다. 모래는 쌀이 된다. 그러나 모래를 먹으면 배탈난다. 물론 어린 아이들도 그것은 안다. 그들이 어려서 모래가 쌀의 대용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이 배가 고파서 그러는 것은 더욱 아니다.

흔히들 말한다. 현실에서 때려부술 수 없으니까 가상공간에서 때려부수는 것이라고. 약간 고상하게 말하자면 ‘억눌린 파괴욕과 투쟁 본능을 게임 속에 투사한다’고들 한다. 그렇지 않다. 어린 아이들도 모래가 쌀의 대용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들이 식욕 때문에 ‘모래에 쌀을 투사’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성인 게이머들이 파괴욕 때문에 가상공간 속에서 ‘자신의 중기병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것은 아니다.

네트워크 게임은 거대한 소꿉놀이다.

어린 아이들은 소꿉놀이에서 아빠나 엄마가 되어 본다. 그리고 게이머는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라는 게임의 가상공간 속에서 바이킹도 되고 롱보우맨도 된다. 변신의 욕망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빠나 엄마, 그리고 바이킹이나 롱보우맨은 만인들에게 친근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소꿉놀이를 하며 아빠나 엄마가 아닌, 5촌 당숙이 되고 싶어하는 어린이는 없다. 마찬가지로 게이머 역시 아무 것으로나 변신하지 않는다.

바깥세계에서는 가질 수도 없는 직업이지만 게이머들에겐 더없이 친근한 바이킹, 롱보우맨, 캐터프랙터 기병 등으로 변신한다. 이것은 ‘나’를 뛰어 넘어, ‘우리’의 환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상공간서 변신 욕망 실현▼

후기산업사회가 개인에게 선물한 것은 똑같은 개인상 뿐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똑같은 상품은 모든 소비자들이 똑같은 구매욕을 가졌다는 가소로운 전제를 가지고 태어난다. 바로 그것이 ‘대중’ 또는 ‘여론’의 신화다. 따라서 후기산업사회에선 한 사람(예를 들어 상품 디자이너)의 환상으로 모든 소비자를 지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서로 다른 사람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후기산업사회의 만가가 울려퍼지는 이 시대에, 개성이 무엇보다 소중해지는 이 시대에, 우리는 대중이 아닌 ‘우리’를 네트워크 속에서 만난다. 파괴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환상을 위해 나는 오늘도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접속, 연결, 확인. 자, 우리 신나게 놀아보자고!

이영도(판타지 소설 ‘드래곤라자’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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