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외교제도 개혁 더 미룰수 없다

  • 입력 2000년 5월 8일 19시 47분


거듭되는 해외공관장 관련 추문으로 외교통상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심기일전을 위해 본부 전 직원이 공직기강을 결의하는 전례 없는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이제 외교제도 전반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냉전이 종식된 지 10년이 넘었고 국제화 세계화가 일상용어가 된지도 오래다. 탈냉전과 세계화의 거센 물결은 국제질서의 근간을 바꾸고 있다. 이념은 퇴조하고 힘의 개념은 재정의되고 있으며 군사력의 유용성은 감소한 반면 경제력의 효용은 증대됐다. 국가 관계에서도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반자가 되고 과거의 동맹이 미래의 경쟁자로 바뀌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냉전의 유산인 분단을 극복해야 하는 동시에 탈냉전 세계화라는 근본적 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이중과제에 당면해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외교에 엄청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과거의 발상, 제도와 관행의 답습으로는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외교제도의 근본적 쇄신이 필요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외교가 진정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외교부의 자기쇄신뿐만 아니라 국가경영 차원의 발상전환이 절실하다.

우선 외교부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외교부는 정년이 길고 고위직이 많아 적절한 긴장이 없으면 조직이 정체되고 현실에 안주하기 쉽다. 외무고시로 채용된 인력이 큰 잘못이 없으면 대부분 고위외교관이나 관리직으로 진출하는 현행방식은 재고돼야 한다. 중견 외교관이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고위외교관으로 진출하거나 일반외교관으로 남는 길 가운데 택일하는 중간선택제도의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정책과 외교 파트의 구분이 안되고 잦은 보직이동으로 인한 정책직의 불안정도 심각한 문제다.

외교부는 공관근무, 국내외 순환근무 등 조직의 특성상 인사행정이 능력보다 연고나 청탁에 영향 받기 쉽다. 인사제도의 혁신을 통해 정책직의 전문성을 높이고 능력 위주의 공정한 인사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외교부의 조직과 편제도 시대변화에 맞추어 과감하게 재정비해야 한다.

외교부 내부개혁과 함께 정부내 외교부의 위상정립도 시급하다. 험난한 지정학적 환경에 처한 한국에 있어 외교는 국가의 생존과 자율성 확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더구나 분단극복이라는 민족적 과제는 고도의 외교역량 없이는 해결되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외교부를 정부의 수석부처로 격상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려해야 한다. 부처 이기주의가 활개치는 현실에서 외교부가 국익의 관점에서 판단하고 총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독일 등 주요 국가는 한결같이 외교부를 수석부처로 해 국정의 중심에 둔다. 우리도 정부수립 후 신생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에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동안 외무부를 수석부처로 했다.

외교부 고유의 기능과 특성을 감안해 조직 구성이나 인력 충원에서도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 전세계에 걸친 외교망을 관장하고 다변화하는 대외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외교부가 국내문제를 담당하는 부서와 동일한 구조의 조직을 가질 수는 없다. 상당수 국가에서 외교통상 부서는 2, 3인의 복수장관과 3∼9명의 분야별 복수차관제를 도입하고 있다. 획일적 정부조직법과 공무원임용법의 속박에서 벗어나 외교부가 국익 추구에 가장 적합한 조직과 인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탈냉전 세계화의 치열한 경쟁시대에 외교는 치국책(治國策)의 으뜸이다. 현재 진행중인 외교부 개혁작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21세기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서 외교의 역할에 대한 심사숙고가 필수적이다. 이를 바탕으로 외교부의 철저한 자기혁신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내 외교부의 적절한 입지와 위상이 확보되어야 한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외교에 안목을 지닌 김대중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백진현 서울대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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