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선거사범 이번엔 본때를

  • 입력 2000년 5월 2일 19시 51분


4·13 총선의 열기는 벌써 차분히 가라앉은 것 같다. 한달 앞으로 다가온 16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정치권의 행보가 분주하다. 그러나 아직 총선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시소 게임을 벌였던 접전지에서 법원에 의한 재검표 결과 당락이 뒤바뀔 가능성은 얼마나 될 것인지가 우선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제 검찰과 법원의 선거사범 처리를 통해 비로소 16대 총선은 실질적인 의미에서 막을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 선거풍토의 고질인 지역감정의 뿌리가 여전히 깊어 극명한 양당구도를 만들어냈다. 금품선거도 맹위를 떨쳐 법정선거 비용을 넘어 ‘20억원을 쓰면 낙선이요, 30억원을 쓰면 당선’이라는 풍설이 인구에 회자했다. 그러다 보니 선거사범도 15대 총선에 비해 58%나 증가된 1643명에 이르렀다. 그 중에는 국회의원 당선자 80명도 포함돼 있다. 금품선거사범 608명, 불법선전사범 351명, 흑색선전사범 238명, 선거폭력사범 103명, 기타 343명에 이르고, 이들 중 민주당 소속이 308명, 한나라당 소속이 274명, 자민련 소속이 155명, 무소속 및 기타가 906명이나 된다.

그동안 금권 관권선거의 병폐와 지역감정이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지적되곤 했다. 관권선거 시비는 지방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격히 감소됐으나 금권타락선거와 지역감정 이용, 흑색선전 등의 불법선거 풍토는 더욱 고도화 지능화했다. 이러한 타락상의 배후에는 어김없이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구태의연함이 자리잡고 있다. 불법과 부정을 통해 당선된 사람들의 의정활동에서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권위와 거룩성이 사라지고, 잘못된 특권의식과 이권 챙기기가 두드러질 것이 뻔하다. 한국정치의 후진성은 바로 이 같은 풍조에 그 원인이 있다해도 지나침은 없을 것이다. 물론 입건된 선거사범 중 낙선자들도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21세기와 새 천년 들어 사회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화두는 새로워짐이다. 선거문화도 의회도 의정활동도 근본적으로 새로워지지 않고는 국민의 일반의지에 부응하기 어렵다.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문화를 새롭게 확립하자면 이제 선거사범에 대해 사법처리를 통한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고질적인 지역감정조장, 금품살포, 흑색선전, 무고성 짙은 폭로 비방행위, 폭력행위, 선거법의 침해 위반행위 등은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추방해야 한다. 비록 개정선거법에 아직도 비현실적인 조항이 있었을지라도 이 법을 위반한 선거사범들에 대한 법 적용과 집행은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공정하고 일관성 있는 법 적용과 집행을 통해서만 법의 권위가 살아날 수 있고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문화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선거사범에 대한 사법처리는 당사자들의 지연술에 휘말려 방만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검찰수사도 이제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제16대 국회 개원 전까지 마무리하고, 법원도 1년 안에는 선거사범에 대한 사법처리가 종결될 수 있도록 각별한 노력을 쏟아야 할 것이다. 깨끗한 선거풍토와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검찰과 법원의 확고한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별히 ‘원칙과 기본’에 충실함으로써 추호라도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불법이 입증될 수 있는 한 소속정당, 관록, 지위고하, 단체 여부를 불문하고 형평과 정의의 원칙에 따라 일관성 있게 사법처리에 임해 주기 바란다. 자칫 편파성 시비에 휘말리게 되면 새로운 선거문화 조성과 법의 권위 모두를 잃게 되리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1세기를 맞아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려면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선거풍토의 경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법원과 검찰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며, 다른 정치적 계산이나 정치적 영향력이 개입하지 않도록 깨어 경계해야 할 것이다. 실제 공명선거풍토는 사법처리만으로 조성되기 어려운 과제다. 그래서 정치권의 자정노력, 제도와 의식개혁이 뒤따를 수 있는 물꼬를 트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김일수<고려대 법무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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