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성동규/음란물 터놓고 토론하자

  • 입력 2000년 4월 24일 19시 26분


인터넷으로 유포되는 음란물 문제는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니다. 아마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컴퓨터를 사주면서 그런 걱정을 할 것이다. 혹시 우리 아이가 음란물을 보지 않을까? 그도 그럴 것이 인터넷을 통해서는 간단히 음란물을 접할 수 있으며 누구든 쉽게 음란물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대중화한 이래 가장 치열했던 싸움이 포르노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미국 정부는 포르노를 규제할 강력한 법인 ‘통신품위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법률은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와 충돌했다. 규제할 내용이 무엇이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면 인류 문명 중 가장 자유로운 인터넷이 그야말로 규제의 공간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당시 대법원의 위헌판결 이유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설령 규제법률이 만들어졌더라도 사실상 규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규제를 위해서는 전세계의 모든 서버를 다 뒤져 음란물을 찾아내야 하지만 그걸 찾기란 그야말로 한강에서 바늘찾기다. 그렇다고 모든 이용자의 컴퓨터를 차단하기란 인터넷을 하지 말라는 얘기와 똑같다. 차단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몇몇 서버에서 오는 음란물 정도를 차단하는 것뿐. 포르노와 국가의 전쟁은 사실상 국가의 패배로 끝이 났다.

어느 사회든 포르노는 있다. 문제는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자취방에서, 책상 밑에서, 화장실에서 포르노를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인터넷이 가져 온 가장 큰 변화는 음지에 있던 포르노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광범위하게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는데 있다.

문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포르노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포르노는 우리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으며, 우리의 생활세계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음지 식물로 바라보고 영원히 음지에서 나오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독버섯은 바로 거기서 자란다. 우리가 얘기하지 않는 틈에 우리는 세계 5위의 포르노 소비국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르노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음지에서 끌어내 포르노에 대해 말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막기만 한다고 막아질 수 없는 게 포르노다. 포르노물은 이미 사회로 나왔는데 그것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 현실, 포르노는 전사회를 감싸고 도는데 여전히 감추려는 현실이 문제다. 집에 컴퓨터를 갖다 놓고 자녀가 포르노를 볼 지 모른다고 두려워하기 보단 그들과 먼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이 얘기하고 들춰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숨겼을 때 더 크게 발생한다. 당당히 말하고 볼 수 있을 때 포르노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그렇듯 포르노도 하나의 성장과정을 거친다. 전세계 인터넷 사이트 중 포르노가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해서 포르노물이 적다는 얘긴 아니다. 본격적인 성장을 구가하기 시작한 인터넷은 포르노와 같은 외설적인 상업적 표현물에서 점차 전자상거래와 금융, 소비와 시장과 같은 전문화된 상거래의 장터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성장 단계다.

인터넷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미완의 바다이자 수많은 사이트들이 범람하는 다양성의 바다다. 그 바다에서 무엇을 찾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이용자의 몫이다. 포르노물을 찾아 헤매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이트를 찾아내고 즐길 줄 아는 항해술을 익혀야 한다. 그 항해술을 익히기 위해 서로 얘기하고 말할 수 있을 때 인터넷은 살아난다.

미꾸라지 한마리를 잡기 위해 댐을 비울 순 없다. 보다 더 많은 물고기들이 살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미꾸라지 한마리가 강물을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일변도의 전략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놓고 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음지가 아닌 양지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이자 다음 세대에게 남겨 줄 인터넷의 문화다.

성 동 규 (중앙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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