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김용택/고향 산천이 서럽게 웁니다

  • 입력 2000년 4월 9일 20시 50분


봄이 왔다.

산에도 들에도 강에도 우리들의 마음에도 봄이 왔다. 이렇게 햇살이 좋은 날 창가에 앉아 한없이 평화스러운 앞산을 본다. 참 좋다. 산도, 물도, 운동장이 좁다고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에도 생기가 펄펄 넘친다.

자연의 넘치는 힘으로 산과 들에는 이제 푸르름과 화사한 봄꽃들이 사람들을 강과 산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까닭 없이 기다림에 들뜨고, 누군가가 나에게 올 것만 같고, 무엇인가가 이루어 질 것만 같아 사람들은 봄빛 아래 설렌다.

이 설레는 봄날에 꽃을 찾아, 산을 찾아, 강을 찾아 사람들은 차를 몰고 어디로 달려가는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보고 시끄러움과 소음에 부대낀 머리를 식히고, 상처받은 마음들을 달래 가라앉히고 돌아오는가.

그러나 이제 이 땅의 모든 산천은 성한 곳 하나 없이 제 모습을 잃었다. 속 편하게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앉아 몸과 마음을 다스릴 곳을 우린 순식간에 흉하게 망가뜨려버렸다.

산 속이든, 강 언덕이든, 그 어느 곳이든 경치 좋고 전망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파헤치고 뜯어 고쳐버리고 거기에다가 엄청나게 큰 콘도와 호텔, 그리고 모텔과 음식점을 짓는다. 산과 강과 거기에 딸린 작은 마을의 집들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큰집을 작은 마을 옆에 지음으로써 마을은 더 초라해지고 산과 강의 모습은 엉망으로 망가져버린다. 오죽 국토가 망가져 가슴이 아팠으면 어느 시인은 이제 고향에 가느니 향수로 사는 게 낫다고 했겠는가.

사람들은 꾀는 곳에 더 꾀어들어 북적거리고 와글와글 아귀다툼을 벌인다. 깊은 산중의 온천 지역이나 절에 한 번 가보라. 참으로 가관이다. 도시의 환락가 한 부분을 삽으로 뚝 떠서 갖다놓은 것 같이 모텔과 노래방과 수많은 음식점들이 화려하다. 그 깊은 산중에 가서도 사람들은 악을 쓰며 노래를 해야 하다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한술 더 떠서 각 지방자치 단체들은 조금만 특별한 곳이 있으면 별의별 유치한 이름을 붙여 먹고 놀자 축제를 벌여 문화를 허비(?)하는 데 앞을 다툰다.

이 나라 산천 곳곳에 먹고 놀자판을 만들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만나면 술 마시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스톱을 치고, 그러다 그것도 싫으면 노래방엘 간다. 적막하고 조용하면 뭔가 불안하고, 짬이 나면 심심하다. 뭔가 화끈해야 하고 숨가빠야 한다. 산천이 저리 험하게 망가져가니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게 험하게 되어 간다. 조용한 산사엘 가도 커다랗게 틀어놓은 불경소리가 온 산을 쩌렁쩌렁 울리니 마음이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생각할수록 부아가 치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예부터 사람은 그 산천을 닮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대체 우린 언제 어디에서 한가하게 앉아 벗들과 인생을 걱정하고, 세상을 염려하며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단 말인가. 어디 가서 강굽이의 유장함을 바라보고, 어느 산에 가서 시린 물에 발을 담그고 한때나마 세상사 시름을 잊을 것인가.

우리 사는 모든 곳이 엄숙하고 심각하기만 하다면 그 또한 숨막힐 일이지만, 그러나 이 땅의 어디를 가든 계획 없이 자연을 파괴해서 전국토를 유흥지화해 향락과 지나친 소비문화가 판을 치게 한다면 우리의 정신문화는 어디에서 숨을 쉬고 자랄 것이며, 무엇으로 살이 찌고 그 꽃을 피울 것인가.

옛날, 이렇게 봄이 오는 봄산에 가서 나무를 하다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은 참 평화로워 보였다. 둥그스름한 초가지붕은 뒷산의 둥그스름한 산 능선과 다정하게 어우러지고, 그 산 어디쯤 초라하게 묻힌 사람들의 무덤 또한 산의 모양처럼 둥그스름하게 서로 어우러져 있었다. 그건 평화였고, 생활을 안정감 있게 잡아주는 자연스러운 조화였다.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서로의 모습이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집을 하나 짓더라도 제발 말없는 산천의 모습을 한 번쯤은 생각하고 지었으면 좋겠다.

김용택(시인·임실 마암분교 교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