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초등학생 컴퓨터 자격증 붐

  • 입력 2000년 3월 30일 19시 44분


벤처붐 속에 인터넷검색사와 정보처리사 등 컴퓨터관련 전문가 자격증을 따려는 초등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학교 주변 학원마다 초등학생들로 붐비는 가운데 컴퓨터설계(CAD) 등 높은 수준의 자격증을 기웃거리는 초등학생들도 상당수다.

30일 본보 취재팀이 서울 시내 20여 곳의 컴퓨터학원을 확인해본 결과 자격증을 따기 위해 수강하는 초등학생의 수가 지난해보다 30∼70% 늘어났다.

▼'벤처키드'만들기 현장▼

회사원 고모씨(30·서울 강서구 염창동)는 최근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조카를 따라 인근 컴퓨터학원에 갔다가 놀라운 풍경을 접했다. 수강생의 대부분이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는 초등학생들이었던 것.

고씨가 찾았던 학원만이 아니다. 30일 오후 서울 강북구 번동 D컴퓨터학원. 20여명 정원인 강의실 대부분이 초등학생들로 가득차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사무자동화(OA)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 중이었다.

워드프로세서를 하던 최모군(10)은 “1분에 250타를 친다”며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200타는 넘는다”고 말했다. 최군은 “OA자격증을 따면 인터넷검색사 등에도 도전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학원 관계자에 따르면 전체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초등학생이며 이중 50% 가량이 OA자격증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고.

같은 시간 서울 동작구 대방동 S학원의 풍경도 비슷했다. 초등학생 수강생 20여명 중 OA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는 학생은 10여명으로 대부분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의 어린 나이였다.

이 학원 관계자는 “예전에도 초등학생들이 자격증을 따기 위해 간간이 찾곤 했지만 요즘처럼 학생들이 폭주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일부 학부모들은 시설이 좋다는 말에 대형학원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 컴퓨터그래픽디자인학원은 “아이들을 맡기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하루에 3, 4건 걸려온다”며 “그러나 전문가를 육성하는 학원이기 때문에 초등학생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왜 자격증인가?▼

‘벤처키드’들이 컴퓨터교육을 접하는 의도는 과거와 사뭇 다르다. 단순히 교육차원을 넘어 자격증 획득을 목표로 하는 것. 이는 요즘의 벤처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현장에서 만난 학부모 K씨는 “벤처붐이 향후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최소한 한두 개의 컴퓨터 자격증을 따놓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해 자격증 공부를 시켰다”고 말했다. K씨는 또 “중학생이 되고 나서 배우면 늦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K씨의 아들은 현재 초등학교 2학년생.

최근 들어 자격증의 종류와 인증기관이 급속히 늘어난 것도 한 원인. 현재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으로 인정받는 한국상공회의소와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 외에도 100여개의 기관에서 자격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자격증의 종류만 해도 OA자격증과 OA를 분야별로 세분한 개별자격증인 워드프로세서, 정보처리기능사, 컴퓨터활용능력시험, 인터넷검색사 등 20여종에 이른다.

▼찬반 양론 팽팽▼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익숙하게 만들어야 경쟁력이 생긴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정보화사회에서 컴퓨터관련 자격증은 필수라는 것. 컴퓨터를 단순한 오락기기로 생각했던 과거에 비해 상당한 ‘발상의 전환’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일부 컴퓨터전문가들은 “컴퓨터의 기본개념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자격증을 따는 데 급급한 공부만 하다가는 오히려 컴퓨터에 곧 식상할 수 있다”며 “자유로운 사고력을 키워주는 게 ‘벤처키드’의 지름길”이라고 조언한다.

<김상훈기자>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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