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국립극장 50주년 기념공연 '태' 연출 오태석

  • 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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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대인 1974년. 정부는 장준하 백기완씨를 잡기 위해 그날 0시 이후로 시위한 사람은 다 체포한다는 ‘소급 계엄령’을 내렸지. 그런데 하필 그날 잡힌 사람들은 신촌로터리에서 처음 거리로 나선 연세대 의대 4학년생 8명이었어.”

당시 34세의 신출내기 연출가였던 오태석. 그는 이날 가슴이 아팠다. 애꿎은 젊은이들이 붙잡혀 목숨이 위태롭게 됐기 때문.

이는 봉건왕조 시절 ‘삼촌이 죄를 지으면, 조카까지 희생시킨다’는 처벌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그해 이 날의 감정을 토대로 서울 명동 국립극장에서 초연된 연극이 오태석의 ‘태’(殆). 이 작품이 국립극장 50주년 우수 레퍼토리로 선정돼 4월1∼9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올해 환갑을 맞은 오태석. 37년간 외길 인생을 걸어온 우리 연극계의 거목으로서 그의 눈에는 아직도 소년과 같은 천진함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생명복제 기술의 발달로 생명은 마치 부호나 숫자, 기호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아무 런 이유없이 지나가던 여중생을 살해하는 사건도 벌어지지요. 인류와 지구환경의 미래를 위해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를 연극을 통해 보여주고 싶습니다. ”

‘태’의 시대적 배경은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즈음. 삼족을 멸하라는 중형이 내려진 사육신(死六臣) 중의 한명인 박팽년의 며느리는 갓 태어난 아들과 종(從)의 아이를 뒤바꾼다. 결국 종의 아들은 대신 죽음을 당하고, 박팽년의 손자는 대살육의 장에서 살아남는다.

오태석은 1974년 초연 당시 총소리를 이용해 40∼50명이 무대에서 한꺼번에 죽어나가는 장면을 연출해 암울한 정치현실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담았다. 그러나 이번 공연은 살아남은 박팽년의 손자에게 세조가 ‘일산’이라는 이름을 내리는 장면으로 끝을 맺어 ‘용서와 화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췄다.

‘태’는 1976년 미국 라마마극장 초청공연,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안 초청공연, 1987년 일본 NHK TV방영 등으로 화제를 낳은 오태석의 대표작.

국립극단의 역대 공연작 185개를 놓고 연극인과 평론가 관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다시 보고 싶은 창작 연극’으로 선정됐다.

대극장에서 공연되기 때문에 생동감을 연출하기 위해 1층 객석 앞부분에 기다란 돌출무대가 설치된다. 4대의 신디사이저로 연주하는 생음악과 안숙선의 애끓는 창(唱)가락, 긴 칼을 찬 남성들의 집단무 등이 삽입돼 생동감 넘치는 무대를 선보일 예정이다. 평일 7시반, 토 4시 7시반, 일 4시. 1만∼2만원. 02-2274-3507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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