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官治금융 한 건도 없다?

  • 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금융감독원은 23일 여러 신문에 낸 광고를 통해 ‘국민의 정부는 금융기관의 인사나 대출운영 등 경영에는 일절 간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나는 관치금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에는 정부가 은행경영을 좌지우지했으나 현정부에서는 단 한 건도 그런 일이 없다”고 말했다.

관치금융 부인(否認)광고를 낸 부처의 고위관계자는 바로 이날 언론계 인사들에게 “국민은행장 선임과 관련해 노조가 반발하고 있지만 절대로 물러서지 말라고 (신임행장측에) 얘기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이렇게 공개한 것은 ‘물러서지 말라’는 주문 정도는 은행경영에 대한 간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이 정부에서는 관치가 없느냐고 은행간부 등에게 물어보았다. 누군가는 “은행이 자율로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말을 돌렸다. 인사개입 여부에 대해 어느 은행 관계자는 “과거처럼 은행이 명단을 올려 일일이 내락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저쪽의 관심사가 전달되는 채널은 있다”며 ‘수명(受命)’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대출청탁이 지금도 있는지에 대해서는 “머리가 아픈 일”이라는 애매한 답이 돌아왔다.

정부측이 ‘은행 정관에 문제가 있다, 지배구조는 이래야 한다, 사외이사 임기는 1년으로 해야 한다’ 등등의 의견을 내놓는 것을 경영 간여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정부측은 금융개혁을 위해 정부가 당연히 해야할 책무라고 보는 것 같다. 정부는 금리통제도 경영간여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세미나에서 대학교수가 은행장의 적정보수(報酬)에 관해 기준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정부측이 ‘그 기준대로 하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보이는 것도 관치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정부측은 그런 문제에 관해 지시한 바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은행들이 세미나에서 제시된 기준을 의식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측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추진계획에 난색을 표하거나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으려는 채권은행 행장에 대해 ‘지도력이 없다’면서 ‘자발적으로 하라’고 하는 것도 관치성 압력인지 아닌지 애매하다. 아무튼 그런 소리를 듣는 행장이 문책 인사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관치’의 해석부터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관치는 없다’는 정부측 말과 금융현장의 분위기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는 게 틀림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김대통령이 말한 대로 ‘관치금융을 청산하고 시장경제원리에 의해 돌아가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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