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이볜 시대]政局의 향방/야당과 개혁추진 갈등 예고

  • 입력 2000년 3월 20일 19시 32분


대만의 정치 개혁이 시작됐다.

51년간 굳건한 아성을 지켜온 국민당이 이번 총통선거 패배로 당내 개혁 요구에 직면한데다 무소속 쑹추위(宋楚瑜)후보가 신당을 창당키로 함으로써 정계의 지각변동이 예고되고 있다.

우선 국민당은 19일 리덩후이(李登輝)총통이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임기가 2년 남은 국민당 주석직에서 9월 물러나겠다고 밝힘으로써 당 지도부가 와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리총통이 조기에 당 주석직을 내놓기로 한 것은 그에 대한 국민당 내부의 반감이 이미 무마 단계를 지났기 때문.

▼ 쑹추위 창당-국민당 분열 ▼

4000∼5000명의 당원들은 19일에 이어 20일에도 타이베이(臺北) 국민당사로 몰려가 당 주석직 즉각 사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금까지 정치 시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년 여당인 국민당원들이 물대포에 맞서며 당 지도부를 상대로 시위를 벌인 적은 없어 국민당이 이번 선거의 후유증을 얼마나 심하게 앓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당내 차세대 선두주자 중 한 명인 마잉주(馬英九)타이베이시장도 국민당 최고의결기구인 당 중앙상무위원회 퇴진의사를 밝히면서 “당원의 직접투표로 주석을 뽑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당의 대대적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 다당제로 정계개편 될듯 ▼

국민당의 분열은 이미 가시권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가장 큰 동인(動因)은 쑹추위의 신당이다. 무소속의 한계를 딛고 당선자와 불과 2% 차밖에 보이지 않은 저력을 과시한 쑹이 새 정당을 창당할 경우 국민당 내 상당수가 옮겨갈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당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민진당의 급진적 노선에 반대하는 사람의 표를 흡수해 거대 정당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쑹은 현재 입법원(의회)의 총 224개 의석 가운데 국민당이 차지하고 있는 117석 중 47∼57석을 빼내올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공룡 정당’인 국민당의 분열이 가속화될 경우 대만은 다당제로 옮겨가면서 입법원 내 역학관계 변동에 따른 정국 불안이 예상된다.

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된 민진당은 거대 야당을 상대로 벅찬 싸움을 해야 한다. 71석에 불과한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천수이볜(陳水扁) 신임 총통이 어떻게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지가 큰 과제다.

우선 개혁관련 법안을 상정해도 각종 이권과 관련된 기존 세력들이 차지하고 있는 입법원에서 이를 거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의회를 해산할 수 있지만 다시 선거를 치른다고 해도 민진당의 지위는 지금보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5월20일 천은 총통 취임 이후 행정원장(총리) 임명을 놓고 입법원과 첫 ‘대결’을 벌여야 한다.

대만 언론은 천이 입법원의 대결을 피하기 위해 여야 모두로부터 존경을 받는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리위안저(李遠哲)박사를 행정원장에 임명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 부패청산 지연 불가피 ▼

사회 개혁의 핵심은 헤이진(黑金)으로 불리는 각종 부정부패를 없애는 일이다. 천 당선자가 선거 유세 때마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사회 구조를 혁신하기 위해 ‘금권 폭력 정치와의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공약해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진당이 집권 경험이 없는데다 인적 자원도 부족하다는 점.

결국은 헤이진에 익숙해진 기존 세력을 내각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사회 개혁은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이는 국민의 새로운 불만요소로 작용해 천의 집권기반을 약화시킬 수도 있다.

<타이베이〓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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