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밋빛 공약'과 숫자놀음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지난주 경실련은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김대중(金大中)후보가 내건 공약(公約)을 평가했다. 각계 전문가 85명이 참여한 평가위원회에서 검증이 가능한 991건을 놓고 최근 한달간 분석한 내용이다. 이에 따르면 김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률은 29.7%(294건)에 머물고 있다. 경실련은 “총선 후의 정국변수와 임기말 권력누수현상을 고려할 때 공약 이행률이 지나치게 낮다”고 지적했다.

그런 가운데 여야 각 당이 총선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건전한 정책대결로 표의 심판을 받겠다는 것이라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미 본란에서 지적했듯이 선거 후 경제에 더 깊은 주름살을 남길 정합성(整合性) 없는 선거용 정책을 급조 양산하는 것이라면 이는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 특히 집권당은 야당들보다 더 신중하게 공약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여당은 국정운영의 1차 책임집단으로 이들의 정책선택은 나라의 현재와 장래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14일 발표한 공약 하나하나를 면밀하게 분석 검증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몇가지 묻고 싶다. 첫째, 김대통령의 대선공약 이행률이 저조한 데 대해 먼저 반성해 보았는가. 총선이 다가왔다고 새 공약을 내놓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대선공약 중 무엇은 애당초 ‘무늬만 공약’이 아니었는지, 무엇은 왜 실천하지 못했는지 정직하게 짚어보고 이를 국민 앞에 솔직하게 밝히는 것이 대통령과 집권당의 바른 자세다.

둘째, 이미 시행중이거나 여러번 발표한 정책까지 새로운 정책인 양 내놓는 것은 공허하지 않은가. 그것은 정책방향에 대한 국민적 인지도를 높이는 ‘복습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엄밀한 의미의 총선공약은 아니다. 공약항목을 ‘100대’로 짜맞추는 행태도 구태의연하다.

셋째, 새로운 공약이라 하더라도 그 재원마련대책은 과연 서 있는가. 이를 구체적으로 밝혀 검증받아야 한다. ‘헛약속’에 그칠 가능성이 높거나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정책혼선과 부작용이 더 클 소지가 있는 것은 지금이라도 철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책의 타당성과 비용 효과에 대한 종합적 분석 없이 ‘장미꽃’을 그려내고 숫자놀음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국민 손에 잡히는 건 아니다. ‘2002년 국민소득 1만3000달러 달성’과 같은 약속도 오히려 인플레 국제수지적자 외채증가 등의 부작용을 부채질할 우려가 있다.

물론 야당 공약의 허실도 따져봐야 한다. 전문가 시민단체 언론 및 많은 유권자가 여야 각 당의 공약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하고, 그 평가를 유권자 선택의 주요 잣대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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