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앰뷸런스 소송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조선시대 초기에도 오늘날의 변호사 같은 직업이 있었다. ‘외지부인’이라는 소송대리인이 억울한 사연을 듣고 소장(訴狀)을 써주거나 소송요령을 조언해줬다. 재판정에 들어가 변론도 하고 승소하면 요즘 변호사들처럼 성공보수를 받기도 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송사(訟事)란 어려운 일이어서 전문인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뭐든지 너무 번성하면 문제가 생기는 법. 그들이 송사를 부추겨 소송이 폭증하게 되자 1478년 성종은 이 제도를 전면금지하고 말았다.

▷520여년이 흐른 지금 그 옛날과 비슷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는 모양이다. 최근 변호사수 급증에 따른 과당 수임경쟁이 소송과잉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법시험 합격자수는 60, 70년대에 매년 100명 이하이던 것이 80년대 초 300명으로 급증했다. 95년까지 300명선이 유지되다가 96년 500명으로 다시 뛴 뒤 계속 늘어 올해는 800명을 뽑을 예정이다. 사법연수원 졸업 후 웬만하면 판검사를 할 수 있었던 예전과는 사정이 다를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우수 졸업생들이 변호사를 더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어느덧 변호사 총수는 3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변호사수의 증가 자체를 나쁘게 볼 일은 아니다. 변호사는 인권과 사익(私益)을 지켜주는 보루이므로 어느 정도까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그들은 자선가가 아닌 이상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도 당연하다. 흔히 말하는 ‘변호사를 산다’는 표현은 그런데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너무 돈에만 집착해 변호사 업계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고객들에게 상처를 주는 변호사 무리가 있어 탈이다. 사건사고를 쫓아다니며 소송을 마구 부추기는 ‘앰뷸런스 변호사’들이 바로 그들이다.

▷법조계 일각에선 “그것 봐라. 사법시험합격 정원을 마구 늘리더니…” 하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사법시험 합격〓고소득 보장’이란 과거에 대한 향수일 뿐이다. 법조계도 경제분야처럼 과점체제에서 경쟁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외면하는 ‘앰뷸런스 소송’ 경쟁은 백해무익하다. 기본적으로 싸움(소송)은 말리는 게 도리라 하지 않는가.

<육정수 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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