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펀드매니저 '바늘방석'…가치株 고집하다 쓴맛

  • 입력 2000년 2월 24일 19시 39분


‘자본시장의 꽃’으로 각광받으며 억대연봉을 자랑하는 펀드매니저들에게 적신호가 켜졌다.

거래소 주가가 폭락하고 내재가치와 상관없이 주가가 움직이는 바람에 막대한 펀드자금을 굴리는 매니저들이 수익률에서 죽을 쑤고 있기 때문. 특히 우량가치주를 선호하던 가치투자론자들은 고객들의 항의를 받아 벼랑 끝에 서있는 심정이다.

▼가치株 고집하다 쓴맛▼

▽펀드매니저가 버티기 어려운 장세〓펀드매니저들은 요즘 ‘밤새 안녕’이라는 인사를 자주 받는다. 수익률이 부진한데도 회사에 붙어있는 것이 불편해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D투신의 L부장은 며칠전 ‘자의반타의반’으로 회사를 휴직했다. 거래소 우량주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짜면서 내재가치를 신봉해온 그는 단기투자를 지양하고 기업실적을 중시하는 정석투자로 유명한 인물. 지난해 높은 수익률을 내면서 시장을 주도했지만 코스닥 열풍과 거래소 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L부장이 휴직을 결심한 것은 시장을 제대로 못쫓아간 자괴감에 고객들의 항의가 엄청났기 때문. 한쪽에서는 코스닥 투자로 대박을 터뜨린 마당에 성적이 이 모양이냐는 투자자들의 항의를 견디기 어려웠다는 것. 그는 요즘 요양을 하고 있지만 회사로 돌아올지는 미지수.

▼분노한 투자자 피해 휴직▼

▽아예 독립의 길로 나서기도〓D투신사의 수석펀드매니저 K팀장은 최근 사표를 쓰고 독립했다. L부장처럼 가치투자에 비중을 두면서 포트폴리오를 짜온 그는 연초부터 불어닥친 주가차별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익률이라면 내로라하는 프로였지만 ‘가치따로 주가따로’ 노는 기형적인 시장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독립. 자본금 30억원짜리 투자자문사를 세워 직접 회사경영을 맡기로 했다.

S운용사의 P씨도 가치투자론을 고집하고 있지만 시장상황을 보면 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성과 패션이 중시되면서 주식시장이 거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원금 까먹어▼

▽펀드매니저는 ‘파리목숨’〓지난해 고수익을 낸 M운용사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대표 펀드들이 종합주가지수에 비해서는 나은 성적을 냈지만 대부분 원금을 까먹고 있고 코스닥 활황에 비춰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코스닥투자를 빨리 따라간 탓에 다른 회사보다 수익률이 양호하다는데 위안을 삼고 있다.

한 투신사 펀드매니저는 “애널리스트는 틀리더라도 정정하면 되지만 투자일선에 선 펀드매니저들은 위험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다”고 토로했다.

<최영해기자> money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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