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충식]미움의 계절

  • 입력 2000년 2월 10일 19시 53분


C의원.

공동여당끼리 등을 돌리고 연합공천도 어려워졌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민주당 자민련간에 상호 볼멘소리와 비방이 거칠어지고 있습니다. ‘2인(人)3각(脚)’으로 비틀거리던 공동정권이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마침내 정권 내부 ‘미움의 빅뱅’인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여야 총재회담 얘기가 수없이 나오면서도 성사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민주 한나라 양당간의 미움, 지도자간의 불신이라고 생각해 오던 터입니다.

며칠 전 춘원 이광수의 글 한 줄을 마주하고 가슴이 턱 막혀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 지도자들마저 반목-질시 ▼

‘우리 동포가 사는 어디를 가도 공통된 것은 가난,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것 두 가지였다.’ 춘원이 일제강점기 중국의 베이징 상하이, 일본의 도쿄 오사카,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곳곳을 방랑한 체험기의 한 대목입니다. 이 동포끼리의‘미움’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제국주의에 병탄(倂呑)된 조국을 해방한다는 지도자들이 사분오열 찢겨져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을 말한 것이라고 합니다. 춘원을 연구해온 이중오씨가 ‘이광수를 위한 변명’이라는 책에 그렇게 적고 있습니다.

미움. 우리끼리의, 그리고 지도자끼리의 증오. 반세기 저편의 애족충정에 타오르던 지도자들간의 반목과 질시를 떠올리며 그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에서 잃어버린 나라와 패망한 민족을 되세우자는 일념의 그들끼리 그리도 각박하게 다투고 처절하게 헐뜯었을까요. 세월이 흘러 지금에 와서 그것은 무슨 의미로 남아 있을까요.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는 이유를 캐다 보면 결국 ‘미움’과 이어진다는 정치학자의 분석을 생각해 봅니다. 독일이 통일되고, 지구상의 냉전이 종식된 지금까지 한반도가 통일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미움,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한 불상용(不相容)의 증오와 분노 때문이라는 분석이지요. 그 말이 맞다면 통일은 원한 품은 세대들이 자연수명을 다한 이후에나 가능한 것인가, 그런 의문도 품게 됩니다만.

C의원.

귀하가 낙천 낙선운동 명단에 한번도 오르지 않은 것을 ‘축하’합니다. 15대 국회의 신인으로 오점 없이,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훌륭한 평을 받은 것이 지인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인이 적지 않게 물갈이 케이스로 들어간 15대 국회, 그 파장(罷場) 무렵에 혁명적인 낙선운동이 펼쳐지는 것을 보며 아이러니를 느낍니다. 신인들의 무능입니까, 구악(舊惡)들의 질긴 위력 때문입니까.

공동여당의 불협화음의 진앙이 된 낙천 낙선운동은 두말할 것도 없이 낡고 썩은 정치, 상당수 현역 정치인에 대한 반감의 폭발입니다. 기성 정치로는 새 시대의 비전도 활로도 기대할 것이 없다, 그래서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외침입니다. 그런데 부적격으로 몰리고 부패 비리 저질 무능의 이름으로 당하는 측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억울하다고 반발합니다. 양측의 미움은 반론 재반론, 그리고 고소고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공동여당간의 갈등을 캐보면 거기에 또 지지기반간의 미움 반목이 깔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남북 대립, 영호남 갈등, 거기에 또 지역에서 소지역으로 핵분열처럼 나뉘는 이 참담한 미움의 소용돌이. 거기에 이제 전국적인 국회의원 총선거라는 군 대결, 면 대항(對抗)의 ‘미움의 제전’이 다가옵니다. 오직 당선을 겨냥해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폭로 비방 중상모략으로 상대를 헐뜯고 서로간에 미움을 불태우며 지샐 것인가, 동네끼리 지지자끼리 반대편끼리 또 얼마나 다투고 치받으며 이 계절을 날까요.

▼ 풋풋한 그대가 증오 뿌리뽑길 ▼

수백년 전 사화(士禍) 당쟁시대의 미움보다 더 지독해 보이는, 정치 지도자에서 밑바닥 저자거리에 이르는 이 시대의 비극적 증오의 파장(波長)을 차단할 방도는 없을까요. 소아(小我) 소리(小利) 작은 주도권, 그리고 조급한 나만의 성취에서 한걸음 물러나면 훗날 역사를 읽는 후손들이 우리 시대와 인간을 더 평가하지 않을까요. 이것이 정치에서 멀리 떨어진 국외자들의 부질없는 잠꼬대일까요. 그래도 낮은 데 사람들은 설날 아침의 뿌듯한 덕담처럼 기대합니다. 미움의 정치도 희망과 관용으로 ‘물갈이’할 수 있다고, 그런 새 정치가 곧 오고 있다고, 귀하 같은 풋풋한 신인이 말해주기를.

sear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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