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72)

  • 입력 1999년 11월 15일 18시 31분


예 인자 겨우 견습이 안떨어졌습니꺼. 기능직이라예.

기가 막혀. 무슨 시험 합격이라두 한 것 같네.

미경이는 전처럼 쾌활하게 말했다.

마 지한테는 새로운 인생 아닌교?

무슨 공장에 다니는데.

일년 반 동안에 육 개월 교육 받은 게 전자 기술입니더. 현장에서 일 년 되었은께네 중고참 짜리는 안되겠습니꺼.

나는 문득 어떤 생각이 나서 미경에게 묻고 싶었지만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간만에 나를 찾은 이유가 뭐야?

예, 지는 인천에 삽니더. 견습 때엔 부천 있었고요. 마 서울 올라올 일이 없심더. 마침 이 근처에 올 일이 있어가꼬 왔다가 언니 생각이 나더라꼬요. 전에 인사도 몬하고 슬그마니 사라져서 너무 미안했어예.

나는 그게 둘러대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 저녁을 안먹었는데, 마침 나가려던 참이었어.

저도 안묵었심더.

잘됐다. 우리 어디 가서 저녁 먹지.

그랬더니 최미경은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이제 마 여섯 시 반 뿐이 안됐네예. 오늘 별 일 없심니꺼?

오늘, 왜…?

지 사는 동네까지 모시고 갈라꼬요.

나도 시계를 보았다. 낮에 작업도 실컷 해두었겠다 더운 날이라 잠도 일찍 오지않을 것이고 나는 에라 까짓것 하는 심정이 되어 버렸다.

글쎄 좀 멀긴 하지만 가는 동안에 배고프지 않을까.

늦게 묵으면 더 맛있지예.

우리는 전철 일 호선을 타려고 먼저 버스를 타고 갔다. 거리로 나서니 완전히 찜통 속 같이 후텁지근했다.

전철 속은 땀내와 열기로 더했다. 나는 슬슬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전철이 구로동을 지나 부평 부근을 지날 때 미경이는 창 밖으로 얼굴을 돌리고 앉았다가 내게 말했다.

오늘 어디 갔다가 송 선배를 만났어예.

나는 그럴줄 알았다. 그래서 억지로 따라나온 길이기도 했던 것이다.

용케 살아 있었네. 어디서 뭘한대?

선배도 인천 있다캅디더. 빼짝 말랐더라고요.

편한 사람이 고생깨나 했겠지.

우리는 공장 지대의 간이주택들이 들어선 예전 피난민 동네 부근으로 갔는데 그제서야 날이 어둑어둑해지는 참이었다.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미경이 말했다.

실은예 언니 용서하이소. 우리가 언니를 초대할라꼬 이래 한겁니더.

우리라니…?

지금 지 방에 송 선배 와서 기다리고 있어예. 선배가 절대로 말하지 말고 모셔 오라고 했거든예. 잠수함들은 이걸 도킹이라고 한답니더.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

가만있어 봐. 그럼 아예 장을 보아가지구 가자.

그럴 필요 없심더. 다 준비해 놨을거라예.

오늘이 무슨…날인가?

미경이 배시시 웃었다.

마 치아뿌릴낀데…지 생일 아닙니꺼?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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