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종훈/과세특례제 '숨은 특혜자'

  • 입력 1999년 9월 11일 19시 21분


“정부에서 제도적으로 자료상을 양성해놓고서는 다른 한편으로 자료상을 적발하겠다고 설치는데, 이거 코미디 아닙니까?”

얼마전 참여연대 조세팀에 찾아온 어느 도매업자의 하소연이다. 이 도매업자의 주고객은 소매상인데 이들의 대부분이 간이과세자나 과세특례자라고 한다. 그런데 소매상들이 물건을 구입하면서 도대체 세금계산서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고소득 자영자만 이익▼

그 이유는 매출을 누락시키기 위해서이다. 도매상으로부터 1억2000만원어치 물건을 구입해 2억원에 판 소매상이 매출을 1억원으로 줄여 신고하기를 원하면 도매상으로부터 세금계산서를 다 받을 수가 없다. 원가 1억2천만원어치 물건을 1억원에 팔았다는 게 말이 안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소매상은 6천만원어치에 대하여만 세금계산서를 받게된다.

간이과세자와 과세특례자는 세금계산서 수수의무가 없기 때문에 이같은 행위에 대해 뾰족하게 제재할 수단도 없다. 반면 일반과세자인 도매상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지 않으면 가산세를 물고 심지어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발행하지 못한 6천만원 어치의 세금계산서를 누군가에게는 발행해야 한다. 물론 같은 비율로 매출을 누락시키는 도매업자도 있다. 그러나 이 도매업자는 대기업으로부터 물건을 공급받아 세금계산서를 100% 다 받아야 하기 때문에 매출을 숨길 수가 없다. 부가가치세 신고 때만 되면 세금계산서 발행을 두고 골치를 앓던 그에게 세금계산서를 자기 앞으로 끊어 달라고 나선 자료상은 구세주와도 같다. 조세행정에서 가장 악질로 평가되는 자료상이 성실한 납세자에게는 오히려 구세주라니…?

간이과세자와 과세특례자는 영세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예외적인 제도이다. 그런데 이들이 전체 사업자의 60%를 차지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예외가 다수이고 원칙이 소수인 현실에서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될리 없고, 세금계산서 수수질서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에서 조세정의란 꿈같은 단어에 불과하다. 참여연대와 동아일보가 공동으로 여론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조세전문가의 90%가 과세특례제도의 폐지에 찬성했다. 납세현실을 가장 잘 아는 세무사는 100%의 찬성율을 보였다. 그만큼 과세특례제도의 폐해가 크다는 증거다.

여당 소속 일부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과세특례제도 폐지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반대 이유는 영세업자의 반발 때문에 표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로 과연 영세업자에게 큰 불이익이 따를까?

현재 280만명 부가가치세 과세사업자중 103만명이 연간 매출 2400만원이하인 영세사업자이다. 이들은 소액부징수자(少額不徵收者)로 분류돼 부가가치세를 한푼도 안내고 있는데 과세특례제가 폐지되더라도 그대로 보호를 받게 된다. 일반과세자로 전환되는 54만명 간이과세자도 실제로 증가되는 세부담은 별로 없다. 이들은 업종별 부가가치율에 따라 세금을 내고 있기 때문에 원래 세부담면에서 일반과세자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영세업자 보호와 무관▼

문제는 10만명 과세특례자이다. 과세특례자에게 적용되던 부가가치세율은 2%인데 업종에 따라 2∼5%로 상향조정되므로 세부담이 약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표계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국회의원들이 10만명의 과세특례자 때문에 왜 이 난리를 치는가? 1200만명의 근로자가 지켜보고 있는데….

그들이 진정 영세업자를 걱정하는 것일까? 지역구 국회의원들을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 자영업자들이다.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대개 간이과세자의 우산속에 숨어 있다. 이들이 일반과세자로 전환된다면 세금계산서를 발행해야 한다. 매출누락이 그 만큼 힘들어지게 된다. 국회의원 선거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고소득 자영업자들이 탈세의 ‘특혜’를 계속 누리기 위해 강력히 항의하고 있으니, 지역구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이 걱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권에 묻고자 한다. 탈세를 미끼로 일부 자영업자의 표를 얻으려는 행위가 돈을 주고 표를 사는 부정선거와 무엇이 다른가? 정당 지도부에도 묻는다. 일부 고소득자영업자의 표와 근로소득자를 비롯한 대다수 성실한 납세자의 표를 바꿀 것인가?

윤종훈(참여연대 조세팀장·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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