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이도성/亂政의 시대

  • 입력 1999년 8월 11일 18시 33분


지금 이 나라 위정자들이 드러내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는 ‘신뢰의 상실’이다. 국정운영능력이나 정치역량에 대한 평가는 한때 부정적이었다가도 상황에 따라 다시 긍정적으로 반전하는 등 기복(起伏)이 있을 수 있으나 신뢰라는 것은 한번 무너져내리면 여간해서 복원되기 힘든 게 그 본질이자 속성이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신뢰의 붕괴는 ‘염치(廉恥)의 몰각(沒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위정자의 경우, 그 병폐는 반드시 ‘책임정치의 부재’로 인한 ‘난정(亂政)’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미 숱하게 논란이 된 DJP의 내각제 연내 개헌 유보결정 과정은 물론 YS의 정치재개 등 전직 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의 행태, 김현철(金賢哲)씨 사면복권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막힌 논란, 정략적 계산에만 몰두하는 듯한 야당의 모습 등 최근 우리들이 목도하는 현실은 한치의 손색도 없는 ‘난정의 전형’들이다.

요즘 여야 정치권에서 앞을 다투듯 제기되는 신당창당론, 제2창당론 등도 따지고 보면 이같은 난정의 연원과 그 맥이 다르지 않다.

우선 제1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의 경우 현 당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창당내력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87년 11월13일 창당된 평화민주당과 맞닿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2창당(신민주연합당·91년 4월15일), 제3창당(민주당·91년 9월16일), 제4창당(새정치국민회의·95년 9월11일)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제2여당인 자민련은 개보수(改補修) 정도의 방침만 밝히고 있으므로 논외로 하고 제1야당인 한나라당의 경우도 최소한 3당합당(90년 2월15일)을 기점으로 잡아도 제2창당(신한국당·96년 2월7일), 제3창당(한나라당·97년 11월24일)을 이미 마친 터다.

물론 이처럼 거듭된 ‘창당’을 거치면서 국민에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진취적 모습을 보이고 당력(黨力)이 신장돼 왔다는 측면을 송두리째 외면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큰 선거 때만 되면 온갖 그럴듯한 수사(修辭)를 동원해 말잔치를 벌이고, ‘멋진 비전’을 제시하고, 이른바 ‘새 피’들을 경쟁적으로 수혈하고, 그것도 모자라 당이름까지 바꿔봐야 몇년도 채 못가 ‘새 피’는 ‘헌 피’가 되고, 그 당이름으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판단할 지경에 이른 게 숨길 수 없는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그렇다면 당연히 ‘왜?’ ‘어떻게하다?’라는 의문이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애당초 ‘새 피’를 가리는 안목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당을 제대로 이끌어야 하는 지도부가 잘못 이끌어서 이 모양이 됐는지, 두 가지 모두가 문제였는지 마땅히 검증되고 규명돼야 한다. 이같은 전제없이 그 어떤 말재간을 부려 창당의 명분을 꾸며본들 머지않아 또하나의 ‘눈가림’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겠는가.

별로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그나마 ‘믿음을 주는 정치’의 먼발치에라도 설 수 있는 길은 겸허한 ‘고해(告解)’의 자세다. 당장은 고통이 따를지 몰라도 당의 수뇌부부터 무엇을 어떻게 하다 이 모양이 됐는지를 냉엄하게 되돌아보고, 진솔하게 고백할 것은 고백하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다소나마 신뢰를 복원할 수 있는 요체라는 얘기다.

그런 자세없이 ‘또 창당’을 하겠다고 나선다면 여든 야든, 누가 됐든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그리고 언필칭 ‘하늘처럼 섬긴다는’ 국민에 대한 도리도 아니다.

이도성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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