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밀레니엄 베스트]건반 「음악의 메신저」

  • 입력 1999년 7월 28일 01시 49분


책은 1440년경에 발명된 인쇄술 덕분에 생겨났다. 그러나 맨 처음 책이 만들어졌던 것은 고대 로마시대, 혹은 그 이전이었다. 아마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떤 천재가 두루마리 책을 보면서 이걸 접어서 한 쪽을 묶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생각이었다. ‘한 쪽을 묶는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이 놀라운 생각의 결과 크기가 작으면서 오래 가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등장하게 되었다.

시계의 문자판 역시 고대의 발명품이었다. 그러나 분침은 16세기말에야 비로소 등장했다. 두 개의 시계바늘은 서로 다른 눈금 체계를 따라 움직인다. 시계의 문자판은 지금까지 고안된 인터페이스중 최고의 걸작이다. 시계의 문자판처럼 그렇게 복잡한 정보를 그렇게 정확하고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장치는 없다. 하지만 책과 시계의 문자판은 원래 고대의 발명품이었기때문에 지난1000년 동안의 걸작으로 꼽힐 자격이 없다. 그렇다면 이제 걸작 후보로 남는 것은 건반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반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4세기의 것으로, 스웨덴에서 만들어진 오래된 오르간에 거의 두 옥타브에 가까운 건반들이 붙어 있다. 건반은 오르간 하프시코드 피아노 신시사이저 같은 악기의 계기반과 같다. 건반이 없었다면 바흐의 음악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순수하게 기계적인 물건이면서 인간의 영혼에 그렇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물건은 건반 외에는 없다.

▽필자:데이비드 젤런터〓위클리 스탠더드의 예술비평가 겸 예일대 컴퓨터 공학교수

(http://www.nytimes.com/library/magazine/millennium/m1/gelernter.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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