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전진우/마나님의 우산

  • 입력 1999년 5월 31일 18시 53분


『비가 올 것 같으니 우산을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한 장관 부인 마나님이 재벌회장 부인 마나님에게 넌지시 건넨 한마디다. 언뜻 들으면 운치있는 말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로비의 고수(高手)’들이나 씀직한 은어(隱語)처럼 들리기도 한다. 대저 말이란 누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했느냐에 따라 같은 말도 그 뉘앙스가 다르기 마련이어서, 마나님들간에 우산얘기가 오간 정황을 떠올려 보면 어째 칙칙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만도 하다.

▽먼 옛날에는 우산이란 없었다. 대개 볕을 가리기 위해 쓰던 일산(日傘)이었고, 비가 내리면 반원형이나 사각형의 직물로 머리를 가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박쥐 형태의 우산은 18세기 중반 한 영국인이 발명했는데 당시에는 주로 상류층의 양산으로 애용되었고, 우산으로는 야외생활을 즐기고 스포츠가 성행한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본래 대오리나 갈대를 촘촘하게 엮어 만든 삿갓을 우산 대신 이용했고, 농사일을 할 때는 도롱이를 썼다. 도롱이는 짚이나 띠같은 풀로 두껍게 엮어 만든 것으로 서양 망토처럼 걸치는 것이다. 한 세대전만 해도 비오는 날 도롱이를 쓰고 논밭일을 하는 농부의 모습은 우리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우리나라에 현대식 우산이 선보인 것은 조선말 개항(開港)이후로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헝겊우산이었다. 이 헝겊우산은 쇠살에 검정 감색 등 어두운 색의 비단을 바르고 한가운데 금속이나 목제 자루를 박은 것이었다. 지우산 비닐우산에 이어 요즘은 우산도 패션시대인데, 그중에서도 고위층 마나님들의 우산은 아무래도 그 용도가 유별난가 보다.

〈전진우 논설위원〉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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