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정옥자/古文書 보존 전문인력 키워야

  • 입력 1999년 5월 28일 19시 45분


최근 필자는 서울대 규장각 관장직을 맡게 되었다. 따라서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고도서 고문서 의궤(儀軌)지도 목판 등 26만여 점에 달하는 문화재를 어떻게 하면 잘 보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특히 경복궁 회랑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규장각에 돌아온 목판을 원 모습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오물의 세척과 보관 공간이 필수적이다. 공간 문제는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목판을 깨끗하게 닦아내는 일이라도 우선적으로 착수해 보고 싶은 것이 간절한 소망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이 조선왕조실록의 보존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보존 상태를 조사하고 있던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담당자들에 의하면 밀랍처리 되어 있는 실록 겉장의 밀랍을 제거해야 한다는 충고였다. 밀랍 처리되어 있는 표지의 밀랍이 응고되어 꺾이고 굳어져서 훼손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작업을 할만한 기술과 인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고 하였다. 보존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최근이고 그것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인력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또 그분들의 이야기로는 서울대의 목판 보존이 다른 곳에 비하여 별로 나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보존 상태는 더욱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곳은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이어서 별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였더니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도 공해로 공기가 나빠져서 유해 물질이 목판에 달라붙는 것도 문제지만 자연 통풍을 가로막는 건물이 들어서서 실제 전통적 보관 방법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하서고에 한지로 된 고서를 보관하는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질문하였더니 습도만 제대로 유지해주면 오히려 지하서고가 방범에도 유리하여 일석이조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전통시대의 보관방법인 포쇄(바람을 쐬고 볕에 쬠)도 없이 습도만 유지한다고 해서 될지 의문이 들었다. 이러한 의문을 전통시대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 대부분이 갖고 있다. 지하 서고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전통시대에는 지상에 서고를 짓고 서적을 보관하였다는데 근거하고 있다. 전통시대의 자연 친화적 보관방법과 현대의 과학적 보관방법을 함께 비교 연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런 분야에 관심을 갖는 고급인력이 부족하고 인재양성 과정도 전무하다는 점이다. 규장각에 온 전문가도 보존학 박사가 아니라 미생물학 박사로서 이 분야에 참여했다가 독학으로 보존학이라는 전문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경우였다. 우리가 서둘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보존학 전문인력을 키우는 일이다.

흔히 전통시대에 이런 전문인을 소홀히 하였기 때문에 기술학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전통시대에는 차라리 분수라는 것을 지켜서 각 분야의 전문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이런 분야에 대하여 관심을 제고시키고 연구 풍토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상당한 대우가 뒷받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표구장이나 매듭장처럼 인간 문화재로 예우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정옥자<서울대교수·규장각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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