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1999년 5월 4일 19시 3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나는 그들이 우리가 길을 건너자 급박하게 골목 안으로까지 추적을 해왔던 것을 생각하고 다시 덧붙여 말했다.
아니… 미행이 아니라 우리를 덮치려구 한거야.
그렇구나. 하나가 성당 안으로 가까이 들어와서 우리 위치를 확인 하려던 거야. 우리가 먼저 본 거지.
다른 놈은 길에서 기다리구 있었을 거야. 몇 명이었을까?
동우는 뭔가 생각해낼 때에 늘 그러듯이 머리를 아래 위로 흔들며 따져 보았다.
둘 아니면 셋? 아마 서울 친구들은 아닐 걸. 남산에서 우리라는 걸 알았다면 그물을 겹겹이 쳐 두었을텐데. 헌데 어디서 꼬리를 달았을까?
너 아니면 나다.
그래, 우리 근처에서 누군가 신고한 거야. 수상한 놈이 있다. 간첩인지도 모른다. 한번 알아 봐라. 그래서 따라 왔을테지. 헌데 어두운 성당 안으로 들어가거든. 그리고 누군가를 만난다. 시골 짭새라두 눈치로 뭔가 수상한 놈들이라는 걸 대번에 알지.
동우의 말은 앞 뒤가 분명했으므로 내가 결론을 내렸다.
대답은 간단하구나. 너나 나나 은신처를 옮기는 거야.
그 방법 밖엔 없겠는데. 아아, 또 고생문이 훤하구나.
난 뭐 짐이라구 해봐야 속옷가지 하구 세면 도구 뿐이야. 그냥 손 털고 일어서면 돼.
나는 노동자 친구를 보내서 며칠 묵게 하고 별 일이없으면되돌아갈거야. 그치들 틀림없이 덮치려면 오늘 밤에 올테니까. 네가 그들이라면 가슴이 두근거려서 오늘 밤을 참아내겠니?
동우의 한결 여유만만해진 말에 나는 잠깐 생각해 보았다.
그런 식으로 자연히 검열이 되겠다. 아무래두 내쪽인 거 같애. 찜찜한 데가 있거든.
우리는 몹시 달기만한 커피를 단숨에 마셔 버렸다. 동우가 일어서기 전에 내게서 봉투를 되돌려 받았다.
그건 아무래두 내가 도로 가지구 가야겠다.
뭔데 그래?
동우는 잠깐 망설였다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금기를 깨는 게 거듭나는 지름길이거든. 저쪽 책이야.
뭐야, 자본? 그건 옛날에 봤는데.
서양 책 말구. 저쪽….
하면서 동우가 자기 머리 위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는 봉투를 옆에 끼고 일어섰다.
나 먼저 간다. 내일 오전에 건이에게 연락해라. 나두 해놓을 거야.
나는 어리벙벙한 채로 앉아서 저쪽의 의미를 생각했다. 그것은 참으로 침이 마를 것만 같은 초조감이 온 몸에 퍼지는 듯한 마지막 경계선이었다. 그러나 또한 얼마나 궁금한가. 민족의 절반은 전혀 다른 세계에서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력을 견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은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동우가 나간지 이십분이 지나서 나도 그 적산집 이층에서 내려왔다. 나는 되도록 우리가 들어섰던 길에서 먼곳까지 걸어나가 버스를 탔다.
나는 안양에서 벌집 동네가 있는 부근의 정류장에서 내리지 않고 두 정거장 못미쳐서 일반 상가가 있는 번화가에서 내렸다. 이미 늦은 밤이었다.
<글: 황석영>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