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의 뿔로 다스렸던 마음속 화로 인한 인후염[이상곤의 실록한의학]〈172〉

  • 동아일보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한의학에서는 인후염의 근본 원인을 ‘화(火)’에서 찾는다. 스트레스와 과로로 몸속에 쌓인 화가 간에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은 목구멍을 보호하는 점액을 바짝 마르게 한다. 목의 점액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걸러내는 기능을 하는데, 점액이 마르면 염증과 불쾌감을 일으킨다. 인후염은 외부 세균이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 등이 주요 원인이지만, 콧물이 목 뒤로 넘어가는 후비루나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목의 이물감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조선 왕실에서는 열을 내리는 청열과 점막을 촉촉하게 하는 자윤(滋潤) 위주의 치료로 인후염을 다스렸다. 재위 기간 내내 극심한 당쟁에 시달렸던 현종은 스트레스로 인한 인후병을 평생 달고 살았다. 목이 붓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실음증에 시달렸는데, 관련 기록만 96건에 이를 정도다. 감기 후유증으로 생긴 인후염에는 감길탕이나 현삼 등을 처방했다. 그러나 마음속 화로 인한 인후염에는 코뿔소의 뿔인 서각(犀角)이라는 약재를 사용했다.

현종 15년 임금의 인후염이 여러 차례 재발하자 어의들은 ‘호박서각고’에 우황을 더한 처방으로 치료했다. 우황과 서각의 조합으로 볼 때 현종의 증상이 단순한 감기 후유증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숙종 3년에는 상열(上熱)로 왕비에게 코피 증상이 나타났는데, 이 역시 서각 처방으로 지혈했다. 이런 사례를 보면 화증 질환에 대한 서각의 치료 효과가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다.

서각은 우황청심환의 주요 성분으로, 지금은 동식물보호조약에 따라 사용할 수 없는 약재다. 우황청심환이 불안과 초조, 두근거림, 중풍 증상을 진정시키는 데 쓰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각이 심열(心熱) 진정 효과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서각은 줄톱으로 잘게 갈아 으깨 약재로 사용했다. 성질이 차고 딱딱해 밤새 겨드랑이에 감싸 안고 있으면 쉽게 물러져 갈기가 편했다. 사람의 겨드랑이는 심장의 경락이 지나가는 곳으로, 몸에서 가장 뜨거운 기운이 흐르기 때문에 차갑고 단단한 서각을 녹인다. 그만큼 서각은 구하기도 어렵고 만들기도 어려운 약재였다.

서각은 차갑고 단단한 성질 때문에 예부터 변치 않는 진리의 상징으로 비유됐다. 초기 불교 경전인 ‘숫타니파타경’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설파한다. 다른 동물의 뿔과 달리 속이 꽉 찬 무소의 뿔에 한 가닥의 흰 줄이 양쪽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을 영서(靈犀)라 하는데, 이 흰 줄은 백성과 임금 사이의 정치적 소통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재 코뿔소는 멸종 위기 동물로 지정돼 있다. 서각의 뛰어난 약효가 역설적으로 코뿔소의 생존을 위협한 셈이다. 사향의 약효 때문에 사향노루가 무분별하게 포획되는 것과 닮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경구 때문에 코뿔소의 뿔이 하나뿐인 줄 아는 이가 많지만, 실제로는 종류별로 다르다. 아시아계인 인도코뿔소, 자바코뿔소, 수마트라코뿔소는 뿔이 하나이고 아프리카계 코뿔소는 콧잔등에 뿔이 하나 더 있어 두 개다. 그래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말은 과학적으로 보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얘기다.

#한의학#인후염#화(火)#스트레스#코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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