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경찰관 「무기의 그늘」

  • 입력 1999년 4월 7일 20시 50분


▽‘경찰’은 영어와 프랑스어의 police를 번역한 말이다. police는 헌법이나 국가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의 polis, 라틴어 politia에서 유래됐다. 어쨌든 police는 경찰의 의미로 처음 쓰이기 시작한 16세기에는 ‘국가가 행하는 일체의 작용’을 뜻했다. 그후 기능이 점차 분화돼 오늘날에는 치안질서 작용만을 가리키게 됐다. 아직도 국가공권력 하면 경찰을 떠올리는 것도 그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경찰제도는 인간의 자기방어 본능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원시사회에서는 천재(天災)나 외적의 침입에 대해 스스로 자기와 가족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후 공동체가 점점 커지면서 이런 자위(自衛)행위를 전담하는 경찰이 탄생한 것이다. 경찰의 영역이 처음보다 좁아지기는 했지만 오늘날에도 가장 중요한 국가작용의 하나인 것만은 분명하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지키는 업무특성상 무기지급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경찰제도에 역기능도 만만치 않다. 그것은 주어진 권한이 워낙 크고 무기까지 갖고 있는 점 때문일 것이다. 총기가 공적(公的)으로만 사용된다는 보장이 없는 게 비극이다. 경찰관도 자신은 물론 가정과 형제자매 등 사적(私的)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인 탓이다. 조직내부 갈등이나 각종 스트레스에도 시달린다. 무기소지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형의 노름빚을 해결해 주겠다며 채권자를 찾아가 그를 권총으로 살해한 경찰관. 올해 26세의 말단순경이다. 형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 같다. 사사로운 일을 무기로 일거에 해결하려는 발상은 참으로 위험천만하다. 한 경찰관의 빗나간 행동으로 끝나지 않고 국가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한 사건이다.

육정수〈논설위원〉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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