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못말리는 도박病

동아일보 입력 1999-01-19 19:21수정 2009-09-24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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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도박꾼 1백여명이 또 붙잡혔다. 검찰의 상습도박 단속이 실적 올리기에만 의미가 있을 뿐 도박을 없애는 데 과연 무슨 효과가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부유층 가정주부들이 이번에도 검찰의 단속실적을 빛내는 데 큰 몫을 했다. 판돈이 보통 3시간인 ‘1타임’에 1억원을 넘어 하루에 수억원을 잃은 경우도 있고 수억∼수십억원대의 재산을 날려 이혼까지 당한 부인이 여럿 있다니 도박의 폐해를 알 만하다.

게다가 골프같은 운동이 중소기업인 등을 울리는 도박에 동원됐는가 하면 승려들까지 고액 포커도박에 가담했다는 보도다. 이쯤 되면 도박망국론이 나올 법도 하다. 도박의 만연은 우리 사회 병리현상의 한 단면이자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한탕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젖은 지나친 욕심이 큰 원인이 아닌가 싶다. 남의 돈을 땀으로써 쾌락과 성취감을 맛보는 정신병적 심리, 삶에 대한 허무감도 작용한다고 한다. 어쨌든 도박은 현실도피적인 일탈행위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쳐온 서민들에게 억대 도박판은 허탈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도박조직들은 개장하기 전 강력검사실의 소등 여부를 살피거나 전화를 걸어 검사의 퇴근 여부를 점검하기도 했다니 기절초풍할 노릇이다. 이번에 적발된 주부들도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도박을 시작했다. 그러나 도박의 중독성때문에 점점 빠져들게 됐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동안 사회지도층과 부유층의 상습도박 사례를 보면 해외에서 거액의 도박판을 벌이다 물의를 빚은 경우도 많다. 기업인들이 해외에서 잃은 돈을 갚기 위해 거액을 환치기수법으로 빼돌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한국인이 봉으로 통할까.

얼마 전에는 국회의원들이 의원회관에서 고스톱판을 벌이다 망신을 당한 적도 있다. 우리 사회는 도박을 범죄로 보는 의식이 희박하고 도박꾼에게 관대한 것이 문제다. 그점이 꾸준한 단속에도 불구하고 상습도박이 줄지 않는 원인으로 볼 수 있다. 판례를 보면 오락과 도박은 엄연히 구별돼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구분이 모호하다는 점도 도박이 뿌리뽑히지 않는 이유로 작용한다.

도박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 나라를 황폐화시키는 망국병이다. 지금의 도박실태는 ‘국가적 재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도박은 형사처벌만으로 뿌리뽑을 수 없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의 삶의 방식과 문화에 문제가 있다. 여가시간을 건전하게 활용하는 길이 다양하게 열린다면 상습도박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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