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심 칼럼]두 영화 이야기

입력 1998-12-08 19:39수정 2009-09-2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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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 극장가에서 나란히 상영중인 이광모감독의 ‘아름다운 시절’과 기타노 다케시감독의 ‘하나―비’는 느낌이 크게 다르면서도 공통점 또한 많은 영화들로 보인다.

우선 감독의 영화철학이 비슷하다. 기타노감독은 “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영화를 받아들이고 각각의 가슴 속 캔버스 위에 자유롭게 나름대로의 이미지를 그려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광모감독도 “영화는 감독의 손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상상력 속에서 새롭게 창조되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완성된다”고 말한다.

▼ 이광모와 기타노 철학 ▼

‘하나―비’는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다. 우울하게 교차하는 삶과 죽음의 대비가 관객의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직접 주연을 맡은 기타노의 어둡고 돌처럼 굳은 표정이 관객을 더욱 울적하게 만든다. 이 ‘적막한’ 영화에서는 화면에 튀는 붉은 선혈조차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빛난다. ‘다케시 블루’라는 그 회색을 머금은 푸른 색조가 없었다면 이 영화가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를 묻게 한다.

그에 비하면 ‘아름다운 시절’은 이끼같은 녹색이 곰팡이처럼 번져나오는 빛바랜 노란색으로 덮인 영화다. 마치 시골집 묵은 볏짚단같은 색이다. 감독은 관객이 영화 속으로 몰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화면은 저만큼 떨어져 있고 관객은 남의 옛날 앨범을 한장 한장 넘기듯 화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다가 가끔씩 산만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50년대의 가혹했던 개인사와 전쟁체험을 담담하게 객관화한다. 이 영화 역시 색감으로 하여 더욱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하나―비’는 ‘천재성이 돋보이는 90년대 최고의 일본 영화’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아름다운 시절’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알리는 보석같은 영화’라고 일컬어진다. 두 영화 모두 대사를 아낀다. 화면은 온갖 미세한 음향들로 가득하다. ‘하나―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개봉되는 일본영화고 ‘아름다운 시절’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금상과 기린상을 받은 한국영화다. 양국 영화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라는 점에서도 유사점이 보인다.

▼ 스크린쿼터의 울타리 ▼

무엇보다 두 영화는 할리우드 거대자본이 전지구를 휩쓰는 가운데 순수한 독창성과 진지한 주제, 탁월한 영상성으로 영화미학의 세계성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그것은 두 영화가 이미 ‘한국영화’나 ‘일본영화’의 벽을 뛰어넘어 ‘세계영화’의 옷을 입고 있음을 뜻한다. 더구나 최근 들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11월 한달동안 4개 국제영화제에서 5개의 상을 수상한 ‘아름다운 시절’이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지금 우리 영화계는 이 메시지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다. 발등의 불로 떨어진 미국의 스크린쿼터 폐지 압력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최첨단 군사기술수준과 맞먹는 미국 영화의 테크놀러지, 엄청난 인적 자원, 한국영화 수백배의 제작비를 쏟아붓는 미국 영화자본과 맞붙어 국제시장에서 영화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면서 스크린쿼터 사수를 외치고 있다.

자존심 강한 프랑스조차 미국의 ‘문화제국주의’ 공세 앞에서 자국 영화지키기에 안간힘이다. 그런데도 역부족이다. 오죽해야 배우 알랭 들롱이 최근 르 피가로지와의 회견에서 ‘프랑스영화는 끝났다’며 모든 연기활동의 중단을 선언했을까. 세계는 지금 미국영화 일색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 영화는 올해 평년작 이상의 수확을 거두고 있다. ‘편지’ ‘여고괴담’ ‘8월의 크리스마스’ ‘약속’ ‘퇴마록’ ‘조용한 가족’ ‘찜’ 등.

한마디로 스크린쿼터가 없었으면 극장에 붙여보지도 못하고 창고에 처박혔을지 모르는 영화들, IMF체제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인들의 뜨거운 열정이 없었으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들이다. 스크린쿼터는 우리 영화를 지키는 유일한 울타리다.이울타리를 허물 수 없다는 영화인들의 호소는 그래서 일단 설득력이 있다.

▼ 좋은 영화만 살아남아 ▼

그러나 영화인들은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 이제 울타리를 지키는 것은 ‘당분간’일 뿐이다. 더 이상 쪽문을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는 시대다. 관객은 영화의 국적을 보지 않는다. ‘좋은’ 영화를 찾는다. 영화인들은 관객이 스스로 지키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우리 영화’라는 이름 밑으로 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두편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과 ‘하나―비’는 바로 그것을 증언하고 있다.

김종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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