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8)

  • 입력 1998년 10월 28일 19시 13분


교유(交遊) ①

우리에게는 펜팔을 열심히 해야 할 이유가 있었다.

물리선생이 ‘불량품들 아지트인 펜팔부를 없애고 그 방을 과학부 실험실로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펜팔부 지도교사인 세계사 선생은 힘이 돼주기는커녕 펜팔부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 한몫했다. 얼굴이 창백하고 늘 더러운 셔츠만 입는 그는 어떤 남미 대사관에 자신이 그곳 왕족의 후손이라는 편지를 끈질기게 보내는 바람에 정신병력이 알려져서 다음 학기면 면직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펜팔부가 유지되는 것은 11월의 개교 기념 행사 덕분이었다. 펜팔 전시회는 매년 인기를 끌었는데, 그 행사를 제대로 치르는지 보고 결정하자는 게 교무실의 의견인 모양이었다.

전시회를 성공시키려면 무엇보다 전시물, 즉 외국에서 온 편지가 많아야만 했다. 오직 답장을 수집할 목적으로 나는 필경사(筆耕士)처럼 부지런히 〈영문 펜팔교본〉을 베껴댔다.

……안녕? 나는 한국에 사는 아무개야.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동생, 스마트하고 핸섬한 소년인 나,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 메리란다. 부모님은 인자하시고 가정은 화목해. 선생님들도 모두 훌륭하셔서 나는 행복하게 학교에 다니고 있단다. 등등.

이렇게 모범답안으로 작성한 편지와 외국 주소를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반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답장을 받을지 저희들끼리 궁리했다. 고궁 앞에서 찍은 사진에다 ‘어느날 우리 집 정원을 거닐며’라고 사진설명을 써서 동봉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아버지가 장관이라고 할까? 아니 아예 대통령이라고 해버려? 청와대에 우리하고 동갑짜리 영식이란 애가 살긴 살잖아”하기도 했다.

편지는 세계 각국으로 보내졌고 더러는 답장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해봤자 세 번이 고작이었다. 자기 소개의 단계를 넘어서면 그 이상은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영작이 막막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얘기로 들어가면 교본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국은 줄기차게 〈펜팔교본〉을 베꼈다. 가령 ‘첫번째’라는 뜻인 ‘1st’를 응용하여 ‘두번째’를 ‘2st’라고 쓰는 식이었다. 그는 ‘2nd’라는 쓰임은 몰랐지만 어쨌든 편지 속에서 손짓발짓하는 통에 외국 우표는 가장 많이 모았다. 덕분에 영어선생이 ‘외국어란 잘 몰라도 일단 부딪쳐야 는다’는 설명을 할 때마다 한 예로 등장하게 되었다. 같은 일을 두고 물리선생은 ‘무식한 놈이 더 용감한 법’이라고 달리 표현했다. 언젠가 남북대결 운동경기에서 북한이 졌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끝까지 패배(敗北)를 ‘패북’이라고 우겼던 조국이니 나도 할 말은 없다.

의욕이 넘친 나머지 그가 십오 개국에 동시다발로 편지를 보낸 것은 잘했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누구한테 무슨 말을 써보냈는지 헛갈렸다. 똑같은 편지를 두 번 보내는 일도 자주 있었다. 점점 편지는 끊어졌고 우표 모으기도 약간 시들해질 즈음에는 어느덧 가을이 와 있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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