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마이너 리그(5)

  • 입력 1998년 10월 25일 18시 57분


숙부인 ③

승주가 해결책을 내놓았다. 바로 뒷집에 소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여자애가 산다는 거였다. 자신의 말이라면 그녀의 무다리는 절대 다리품을 아끼지 않으리라고 승주는 자신했다. 사실이었다. 소희네 펜팔부와 만날 약속은 의외로 쉽게 정해졌다. 그동안 우리는 그 자리에서 써먹을 영어 인삿말을 몇 개라도 외우자고 서클룸에 모여 앉아서는 여자애들은 언제 겨드랑이 털이 생기는가, 하루에 한 반에서 몇 명이나 생리를 하고 있을까 등등의 화제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관심이 없는 것은 두환 혼자였다. 두환은 만수산 4인방 따위와는 견줄 수 없는 중대사업, 즉 18동인(銅人) 조직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 전해에 있었던 고교야구 지역 예선 때였다. 가벼운 흥분 속에 전교생이 보무도 당당하게 응원을 갔다. 헌데 우리 학교 야구부는 2회에 한꺼번에 5점을 내준 후 단 한 번도 역전을 시키지 못하고 7회에서 만루 홈런을 맞고 말았다. 콜드게임이었다. 경기장을 나오는 두 학교 학생들의 모습은 대조적일 수밖에 없었다. 한 쪽은 히히덕거렸고, 분을 삭이지 못한 다른 한 쪽은 그런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긴장이 감돌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시 대항 체육대회나 교련 실기대회 이후 으레 따르는 사소한 패싸움의 전조이기도 했다.

그런 류의 패싸움은 저수지에서 물수제비뜨는 것과 비슷하다. 파문이 파문을 만드는 것이다.

맨처음 수면 위로 차돌을 던지는 역할은 대개 경기에 진 학교의 조금 덩치 좋고 성질 사나운 아이들이 한다. 그들은 건방지다는 둥 기분나쁘게 생겼다는 둥의 죄를 물어 상대 학교의 아담한 아이들을 몇 대 때려준다. 그러면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여기저기 동심원을 만들며 먼지를 일으킨다. 그러다가 호루라기 소리 몇 번 나고 우르르 뛰어가는 발소리가 정신없이 휘몰아친 다음 흐지부지된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이다. 자기 학교 아이가 맞았다는 소식은 이내 무시무시한 단체 깡패들의 귀로 전달된다. 보통 ‘세븐’이니 아니면 흙에 흙을 더한 ‘황토흙’이니 하는 이름을 가진 그들은 상대의 학교 앞 같은 곳에 잠복했다가 그 학교 아이들의 뼈에서 가루가 떨어질 때까지 정의의 주먹을 휘두른다. 그 소식을 다시 전해들은 저쪽편 단체 깡패들은 이를 악무느라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복수가 시작된다. 두환이 하는 것도 바로 그 사업이었다.

두환네 패거리 중 하나가 보았다는 ‘소림 18동인’은 중국영화였다. 온몸에 금가루를 칠한 협객, 이른바 동인(銅人) 열여덟 명이 동상처럼 무표정하게 일사불란한 무술을 펼친다는 내용이었다. 두환네는 그것을 모델로 조직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일단 숫자로 적을 제압하면 심리전에서 유리하니 백전 구십오패인 그들로서는 그처럼 좋은 지략이 없을 듯했다. 그 말을 곧이들을 얼빠진 고등학생 열여덟 명을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으므로 두환은 몹시 분주했다.

<글:은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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