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기막힌 정부기관 퇴직금

  • 입력 1998년 10월 18일 19시 03분


정부 산하기관들의 엄청난 퇴직금 규모가 세상을 놀라게 하고 있다. 정부의 그늘에 숨어 독점적 위치를 지켜온 산하기관들이 국민의 돈을 멋대로 설정한 기준에 따라 임직원들에게 퇴직금으로 나눠주었다. 27개 정부투자기관들은 6천억원 가까운 돈을 명퇴금으로 얹어주었다. 작년부터 지난 4월까지의 통계라니 그 이후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실시된 기간중 얼마가 더 나갔을지 궁금하다.

정부 산하기관들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일부 기관들은 퇴직금 누진제에 따라 30년 근무시 1백3개월치 급여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주도록 하고 있다. 통상 1년 근무에 한달치 남짓의 월급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주고 있는 일반기업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 결과 20∼30년 근무한 사람의 퇴직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것은 아무리 산하기관의 돈이 제것이 아니라 해도 너무했다. 어떤 경우는 명퇴금만 3억원에 가까웠다니 놀라울 뿐이다. 퇴출 은행의 하급행원들에게 3개월치 위로금만 지급하라고 고집을 부렸던 정부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정부 산하기관들이 이처럼 퇴직금에 후할 수 있는 것은 잘못 책정된 퇴직금제도 때문이다. 지나치다는 지적에 따라 고쳐나가고 있지만 산하기관 중 20여개는 아직도 구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의 투자기관 과잉보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민이 고객인 이들 기관의 운용은 경쟁이 필요없는 독점적 사업을 주축으로 하고 있다. 정부가 이들을 제대로 감독해왔다면 퇴직금 과다지급식의 방만한 운용은 없었을 것이다. 퇴직금에 이 정도로 헤프다면 다른 지출은 오죽했을까. 여기서도 국민은 봉이 된 느낌이다.

경제위기로 대부분의 국민이 고통 속에 살고 있다. 미래가 불확실해 서민들은 적은 봉급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불안스러운 나날을 지내고 있다. 밀린 노임도 받지 못한채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둘인가. 이런 때 퇴직금으로 수억원씩을 나눠갖고 여기서 생기는 금융소득으로 안락한 생활을 하는 부류가 있다면 이는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공기업 구조조정이 경쟁력향상에 있다고 하면서 이런 식으로 돈이 빠져 나간다면 경쟁력 제고는 물건너 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심각한 문제다.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바로잡겠다니 기대해 보아야겠다. 공기업 경영주체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대안이 나왔으면 한다. 정부산하 기관들의 주인이랄 수 있는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공염불이 되지 않기 바란다. 환란의 고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불로소득을 하는 계층이 있다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단합은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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