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동만/「9·9절」과 북한의 진로

  • 입력 1998년 9월 9일 19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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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정권 창건 50주년인 9일 최고지도자 김정일(金正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김일성(金日成)광장에서 열병식과 군중퍼레이드를 벌이는 등 성대한 9·9절 기념행사를 벌였다.

지난 50년간 북한은 김일성주석의 시대였고 이제는 김정일 당총비서 겸 국방위원장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개정된 헌법에서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되었다.

21세기를 앞두고 한반도 전체가 거센 도전을 맞이하고 있지만 체제 존폐의 기로에 놓인 북한의 경우 변화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하다. 북한의 변화란 김일성이 쌓아놓은 체제의 변화를 뜻하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것엔 김일성주석의 재평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김정일은 이러한 사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 헌법개정 「변화」시도 ▼

북한이 공화제의 근본 원리를 망각하면서까지 ‘김일성이 영원한 주석’임을 헌법에 명문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떻든 북한도 이번 헌법 개정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작년까지 식량난 때문에 1930년대식 ‘고난의 행군’을 하던 국가가 ‘사회주의 강성대국’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인공위성 발사성공’은 이 전환의 상징이다.

그러나 이 모순된 이미지 전환은 왜 일어난 것일까. 이것은 북한이 그동안 일관되게 추구하던 대외 전략이 벽에 부닥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체제생존을 위해서는 외부로부터의 경제 지원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핵 개발을 포기하는 대신 약속된 미국의 경제제재조치 완화는 북한의 미사일 수출 문제와 연계되어 좀처럼 진전되지 않았다. 같은 약속 사항이던 미국의 중유 공급조차 새로운 핵시설 의혹이 제기되면서 벽에 부닥치게 되었다.

무엇보다 막대한 배상금을 기대하던 일본과의 수교교섭도 일본측이 일본인 납치사건 해결을 전제로 내세움에 따라 사실상 중단 상태에 빠졌다. 제한적으로 진행되었지만 북한의 외화 부족에 큰 도움이 되었던 남북 경협도 IMF위기 이후 격감됐다.

따라서 북한이 중동국가들에 수출하던 미사일 등 군사무기수출이 외화 가득원으로 더욱 큰 비중을 갖게 되었고 핵개발 동결 이후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일 유일한 수단이 된 것이다.

북한은 2천만명의 주민이 생활 단위를 이루면서 50년을 유지해온 체제이지만 세계적인 탈냉전상황 하에서도 여전히 동아시아 국제 질서 속에서 정상적인 일원으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건국 50년을 맞이하면서 실현해야 할 국가 목표는 바로 이 ‘비정상적인’ 국제환경을 타개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대국 미국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없이 북한이 개혁 개방을 통해 세계자본주의 시장에 편입되고 체제 생존을 기할 수 있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전붕괴 이후 거의 10년이 되도록 이러한 목표가 실현되기는 요원해 보인다. 결국 북한이 21세기를 앞두고 선택한 것은 국방 총책임자가 국가원수 역할을 한다는 ‘국방위원회 체제’, 즉 ‘군 중심의 위기 관리체제’이다.

경제난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만성적인 것이기 때문에 항시적인 위기관리 체제가 필요하고 가장 믿을 만한 조직자원은 군대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아사자가 속출하는 식량난과 고립된 국제환경 속에서도 주민들이 희망을 품을 미래의 목표가 필요하였다. 그것이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지향한다는 선언으로 나타난 것이다.

▼ 위기 관리체제 고수 ▼

북한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해 있을수록 건국 50주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남북한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는 절실해진다. 실현이 임박해 있는 금강산 관광이나 최근 확대되고 있는 민간교류에서 나타나듯 북한은 정경분리에 입각한 남북경협 및 비정부간 교류에 대해서는 이미 적극 호응하고 있다. 경제난을 타개할 뚜렷한 길이 달리 보이지 않는만큼 북한의 이러한 실리주의적 실용주의적 기조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더욱이 발사사건으로 대일 관계가 악화되자 당분간 경제협력에서 일본에 대한 기대는 단념하고 정경분리에 입각한 남북경협을 더욱 중시하는 자세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내부 개혁은 이러한 외부와의 접촉 교류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체제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 수준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진행될 것이다. 우리는 북한 체제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딜레마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남북대화를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서동만(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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