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반성없는 일본

  • 입력 1998년 8월 17일 18시 59분


태평양전쟁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일본 도쿄 야스쿠니(靖國)신사가 15일 예년보다 더 많은 참배객들로 붐볐다고 한다. 일본 정치인들 중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는 별도의 전몰자추모행사에 참석했지만 21명의 각료중 13명과 여야의원 54명 등이 참배했다는 것이다. 과거사를 정당화하려는 각종 우익단체들의 집회도 어느 때보다 규모가 크고 열기가 높아 또다시 군국주의 부활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중이다.

‘올해도 각료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반복됐지만 야스쿠니를 둘러싼 사회상황이 과거와 같지 않다’고 한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분석은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관심을 끈다. 이 신문은 경기침체로 인한 불안감, 국가규모의 새로운 의지처를 원하는 초조감 때문에 반세기 전의 비극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는 위험이 저류에 싹트기 시작했다고 사설에서 지적했다. 일본사회의 뒤틀린 민족주의 회귀 분위기를 경고한 것이다.

일본사회가 이처럼 역사 역류의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일본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이웃나라의 우방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참회와 반성이 앞서야 한다. 그런 바탕 없이는 지금과 같은 이웃과의 반목과 갈등만 계속될 뿐이다. 침략전쟁을 부인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사회 일각의 비이성적 태도를 국제사회가 지탄하고 우려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최근 유엔 인권소위원회에 제출된 ‘맥두걸보고서’를 정식 거부한 일본정부의 태도도 그렇다. 일본정부는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과거 군국주의 일본의 죄상을 적나라하게 지적한 이 보고서를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짓밟힌 인권과 명예를 되찾겠다는 위안부출신 할머니들의 절절한 호소는 지금과 같은 미봉책으로 결코 얼버무려질 문제가 아니다. ‘맥두걸보고서’가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여전히 위안부문제에 대한 책임을 거부하고 이미 ‘종결된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일본과 진정한 이웃이 되어 함께 다음 세기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10월 일본방문이 그같은 노력의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자면 우선 일본측이 진심으로 과거사문제를 해결하려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 야스쿠니신사를 자랑스럽게 참배하고 있는 일부 일본 지도층인사들이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우익단체들의 행동은 양국간의 신뢰만 크게 훼손시킬 뿐이다. 이래서는 과거사 문제의근본적인 해결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일본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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