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상춘/中 위안貨와 동아시아 경제

  • 입력 1998년 8월 11일 19시 52분


세계경제는 제2의 대공황을 맞을 것인가. 이 우문(愚問)은 최근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세계적인 관심사로 대두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위안화 절하문제는 세가지 측면에서 논의돼 왔다. 하나는 경쟁적 평가절하설이다.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한국과 아세안 통화가 50% 이상 절하됨에 따라 이를 만회하기 위해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할 것으로 생각돼 왔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내수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위안화 절하를 통해 수출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내수보완론이다. 세번째는 지난해 중국에 귀속된 홍콩경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미국과 대만의 투기자금들이 홍콩달러화를 공격하고 이를 방어하는데 실패한 중국이 위안화 절하를 단행할 수밖에 없다는 음모설이다.

▼ 상황악화땐 절하할 것 ▼

공교롭게도 최근 이같은 요인들이 한꺼번에 겹치면서 위안화 절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5월부터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섰고 양쯔강 대홍수로 침체될 내수를 보완하기 위해 수출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때맞춰 홍콩달러화가 환투기 대상이 되면서 위안화 절하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실제로 위안화 절하를 단행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계획과 대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단기적으로는 신중한 자세를 취하겠지만 지금의 악화된 상황이 지속될 경우 위안화 절하는 어쩔 수 없는 정책수단이 되리라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조만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앞두고 있는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할 경우 미국 등 선진국과의 통상마찰이 심화될 것이다. 아시아 내에서도 일본에 이어 맹주를 꿈꾸고 있는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할 경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주도력이 급속히 상실될 위험이 있다.

대내적으로는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 홍콩과의 경제통합에 문제가 발생한다. 경제통합에서 가장 중요한 화폐의 교환비율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양쯔강 대홍수에 따른 복구와 현재 추진중인 9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외자를 유치하는 데도 상당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중국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위안화 평가절하에 따른 득실을 따져가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할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중국이 처한 대내외 여건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을 경우 현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위안화를 절하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몰리게 될 것이다.

위안화가 절하될 경우 세계경제에는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우선 세계경제는 대공황문제가 피부에 와닿을 것이다. 90년대 들어 국제자금공급의 중핵(中核)이 된 일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위안화 절하는 일본의 추가 경기침체와 아시아 통화의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국제투기자금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찾지 못해 더욱 공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물론 이때 선진자금들은 머니게임에 치중할 것으로 보이는데 만약 실물경제가 받쳐주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세계경제는 금융공황에 빠지면서 그동안 간헐적으로 우려해온 금융자본주의의 폐단이 가시화될 것이다.

특히 과거 30년간 일본을 필두로 한국 등 신흥공업국(NICs) 아세안 중국 순으로 안행(雁行)형태(Flying Geese Pattern)적 성장에 따라 기적을 창출했던 아시아경제가 이제 마지막 남은 중국이 무너질 경우 80년대 중남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가능성이 있다.

▼ 대외환경변화 대비를 ▼

이런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결국 우리 경제가 이런 환경변화를 정확히 인식하고 사전에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대외환경의 멍에로 그대로 고사(枯死)할 것이다.

따라서 정책당국은 대외환경변화에 따른 종합적이고 균형잡힌 대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정부는 그동안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대내문제 해결에만 치중하다보니 대외정책이 없고 있다 해도 너무 미국 편향적이지 않느냐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다.

지금의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위기상황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우리와 입장이 같은 동아시아 국가간에 공조체제를 구축해 지금의 상황에 대처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주변 여건에 대한 대응력을 길러야 한다. 정책당국이 먼저 외채를 조기에 상환하자는 구상보다 최소한 순외채에 해당하는 가용외환보유고를 확충해 원화의 통화가치 방어능력을 키워야 한다. 외환정책도 달러화보다 엔화 위안화 등 경쟁국 통화와 연계해 운용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상춘(대우경제硏 국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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