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66일만의 의장 탄생

  • 입력 1998년 8월 3일 19시 25분


‘식물국회’ 66일만에 의장이 탄생했다. 5월29일로 제15대 국회 전반기 의장단 상임위원장단 상임위원의 2년 임기가 끝난 이후 비로소 의장이 선출돼 후반기 원(院)구성의 작은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오랜 기간의 의정파행에 비추어 너무도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 여야는 국회를 조속히 정상화해 개혁입법안 처리 등 밀린 일에 매진해야 한다. 국회 장기공백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진통을 겪었지만 50년 의정사상 처음으로 의원들의 자유투표로 의장을 뽑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이제까지는 대통령이 내정한 여당측 후보가 형식적 투표를 거쳐 의장으로 선출됐고, 그것이 국회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킨 요인의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는 여야후보 2명에 대한 의원들의 세 차례 투표로 의장을 뽑았다. 의원들에 의한 의장경선이 새 관행으로 정착돼 국회 위상제고와 정치발전으로 이어지기 바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경선결과에 반발해 의원직 총사퇴와 국회참여거부를 결의함으로써 정국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나라당의 그런 처사는 옳지 않다. 원내 다수당인데도 자기당 의장후보가 낙선한 것은 ‘권력의 압박’ 때문이라는 주장에 설령 일리가 있다 하더라도 일부 의원의 이탈투표는 일차적으로 당내문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의장경선을 먼저 제의한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그런데도 경선 패배에 불복하며 의원직과 국회운영을 볼모로 저항하는 것은 의회주의 정신에 배치된다. 한나라당은 경선결과에 승복하고 오늘 국무총리인준안 처리 등 국회일정에 동참해야 옳다. 여권 또한 한나라당과의 성실한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잘잘못을 떠나 다수야당의 반발은 국회운영을 어렵게 하고 그 책임은 여권에도 돌아간다.

박준규(朴浚圭)의장은 첫 ‘경선의장’의 의미를 깊게 새겨야 한다. 대통령의 내정을 받았다고 해서 대통령에게 구속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경선의장’에 걸맞게 국회의 자율성과 권위를 지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더구나 여야는 의장의 당적이탈을 새 국회법에 반영하기로 합의했다. 박의장은 당파를 초월해 국회를 중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의장선출을 계기로 여야는 ‘노는 국회’와 ‘저질정치’를 청산해야 한다. 국회를 보는 국민의 심경은 비난과 분노를 넘어 이제는 경멸과 체념으로 바뀌고 있다. 국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원구성을 빨리 마치고 계류 안건을 차질없이 처리해 국민의 고통분담에 동참하는 면모를 보여주어야 한다. 의정의 생산성과 수준을 높여 ‘일하는 국회’ ‘품위있는 정치’를 선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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