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웅/은행퇴출과 금융업무 특화

  • 입력 1998년 6월 29일 19시 53분


정부는 마침내 동남 대동 동화 경기 충청은행 등 5개 부실은행의 퇴출(退出)을 명령하고 이들의 자산 부채를 우량은행에 양도(P&A)하도록 했다. 이미 다수의 종금사 증권사 등이 폐쇄됐지만 이제 은행까지 퇴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그동안 지지부진하던 금융구조조정은 시작되고 앞으로 부실 금융기관에 대한 매수 합병 퇴출 등이 일상화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깨졌다. 그동안 성장과 고수익에만 집착하고 투자위험이나 내실에는 유난히 무감각했던 우리나라 기업 금융기관 투자자들의 인식도 새롭게 바뀔 것 같다. 도적적 해이(Moral Hazard) 문제가 해소되고 투자 수익과 위험에 대한 균형감각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한번 무너진 은행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금융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금융정상화가 이뤄지는 등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부실은행 퇴출에 대한 외국 투자가들의 평가는 아직도 기대수준에 못미친다는 것이다.

▼ 혹독한 자구노력 시급

퇴출은행들이 모두 소규모 은행들이라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건수는 많이, 충격은 최소화하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던 것 같다. 역시 큰 은행은 쓰러질 수 없다(大馬不死)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이번에 퇴출을 면한 부실은행들도 앞으로 경영진교체 감자 감원 점포축소 등 혹독한 자구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같은 구조조정으로 대량실업이 불가피하며 부실은행은 살아남더라도 자산 부채규모가 대폭 축소될 것이다.

국제업무와 거액 기업금융 업무를 포기하고 정부로부터 경영정상화 계획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은 부실은행들은 앞으로 대형 상호신용금고 수준의 중소규모 은행으로 남든지, 다른 은행과 합병 또는 외국 금융기관에 매각되는 운명을 맞게될 전망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기업 금융 구조조정을 통해 축소지향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부실기업과 부실 금융기관은 대부분 차입의존에 의한 과도한 외형확장에 그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 금융기관의 지나치게 높은 자산증가율이 기업의 과잉 중복 투자 등 투자낭비를 가능하게 했으며 부동산 투기, 방만한 지출, 각종 거품 등의 부작용을 초래했다. 중남미 동남아 등 신흥 개도국들이 금융 외환위기를 맞은 것에도 예외없이 기업과 금융의 과도한 자산증가가 부실화로 이어진 배경이 있다.

금융부실화를 해소하고 금융기관의 건전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과도한 자산증가를 억제해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금융기관의 자기자본 충실화를 요구하고 국제결제은행(BIS)기준 자기자본비율 8%를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재무구조가 취약한 은행들은 대폭적인 자산감축이 불가피하다.

자기자본 충실화를 위해서 은행간 합병이나 외국자본 유치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제일 서울은행의 처리는 정부출자로 복잡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외국금융기관에 매각을 서둘러야 한다.

제일 서울은행의 처리는 5개 소규모 은행들의 퇴출보다 훨씬 큰 충격과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국유화한 상태로 계속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은행들은 매수 합병 외자유치 등을 통해 대형은행 선도은행으로 발돋움하거나 부실자산 처리로 인해 중소규모 은행으로 축소되거나 또는 퇴출은행 등으로 각기 갈 길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 자기자본별 역할 분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은행들은 대출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금융경색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선도은행은 국제금융, 대기업 여신 등 광범위한 금융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재무구조가 건실한 선도은행만이 대기업 대출업무를 할 경우 대기업에 대한 편중 대출 문제는 저절로 해소될 것이다.

반면에 중소규모 은행으로 편입된 은행들은 중소기업금융을 확대함으로써 지역금융 중소기업금융도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다. 구조조정을 통해 은행들은 규모와 자기자본 충실화 정도에 따라 국제금융 대기업금융 중소기업금융 지역금융 등 다양한 금융 업무에 특화하여 다양한 금융 수요에 부응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업이나 금융기관은 모두 차입경영을 지양하고 재무구조를 개선함으로써 건전 경영을 통한 경쟁력 회복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재웅(성균관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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