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스탠더드 라이프]일본인들「남에게 피해 안주기」

  • 입력 1998년 6월 19일 07시 46분


94년 일본 부임후 도쿄(東京)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아침부터 비가 내려 제법 붐빈 출근길. 지하철에 오르기 전에 사람들은 우산을 잘 접어 끈으로 동여맸다. 옆 사람에게 물이 튈까봐 신경을 쓴 것.

서울 지하철에서 흔히 보듯이 신문을 넓게 펼쳐보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들 노트만한 크기로 조심스럽게 접어 읽고 있었다.

일본 부임 전에 귀가 닳도록 들은 얘기지만 ‘메이와쿠(迷惑·남에게 끼치는 폐)’를 꺼리는 일본인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 ‘충격’이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속에서 워크맨 이어폰에서 나즈막히 흘러나오는 노래나 말소리도 듣기 쉽지 않다. 시민단체들은 매년 발표하는 ‘지하철 이용 꼴불견’ 랭킹에 ‘모기 소리만한’ 이어폰 소리도 집어넣는다. 메이와쿠의 범주에 든다는 것.

후쿠오카(福岡)지사 근무 시절 애용한 공중목욕탕은 메이와쿠 문화의 상징. 다른 손님에게 물을 튀기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물이 흩어지는 샤워기 사용은 가능하면 피한다. 사우나실에서도 죽은 듯이 조용히 앉아있다가 행여 땀이 바닥에 떨어질까 조심스럽게 나간다. 이미 다른 손님이 들어앉은 탕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93년 유명한 벳푸온천에 단체관광온 한국인들이 탕내에서 고성을 지르고 이곳 저곳에 침을 뱉는 바람에 목욕탕 직원들이 기겁을 했다는 신문보도도 기억난다.

아파트 주변 일본 주민들과 인삿말 정도는 나눌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의 일.

아내가 오랜만에 담근 김치를 옆집에 보내자 그집에선 마땅하게 보답할 것이 없었던지 접시에 배추를 얹어 보내왔다. 남에게 선물을 받은 것도 폐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이다. 반드시 빠른 시일내 되갚아야 직성이 풀린다.

박래성(대한항공 화물영업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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