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 칼럼]자카르타의 피플파워

  • 입력 1998년 5월 22일 19시 25분


인도네시아의 절대권력자 수하르토, 그의 32년 철권통치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피플 파워였다. 노회한 수하르토로서는 버티고 모면해 보려 안간힘을 다했지만 이미 한계수위를 넘어선 국민적 분노는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집트에서 돌아온지 엿새만에 그는 사면초가 속에 마침내 무릎을 꿇었다.

▼ 철권통치 무너뜨린 민심 ▼

국제통화기금(IMF)이 들어간 곳 치고 정권이 안바뀐 나라가 없다지만 국민의 존재를 우습게 안 독선과 오만이 진작부터 그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어느 정권이고 부단한 자기개혁이 없으면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된다는 교훈, 아무리 권력기반이 철옹성같아도 민심이 등을 돌리면 하루아침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만다는 역사의 경험법칙을 재확인시켜주는 사례다.

힘의 원천으로서 군부만 잘 장악하면 독재는 유지된다는 가설도 맞지 않았다. 군의 상층부는 권력의 수족일지 몰라도 하부구조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자제들이다. 성난 함성의 자카르타 거리에 15만 무장병력을 진주시켰으나 병사들은 이미 심정적으로 시위대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승만(李承晩)을 몰아낸 한국의 4·19 때도, 마르코스를 축출한 필리핀의 2월혁명때도 그랬었다.

수하르토는 물러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하비비 새 대통령의 동시퇴진, 수하르토 처형, 그 일가의 재산몰수같은 구호들도 있고 보면 사태진전을 점치기가 매우 어렵다. 시작은 정작 지금부터다. 혼란이 지속되면 군부 쿠데타가 없으란 법도 없다. 4·19 후 1년간의 혼란이 5·16을 부른 한국의 전례가 재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적 궐기로 일단 수하르토를 권좌에서 몰아낸 것은 피플 파워의 값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또하나의 민권(民權)승리로 세계사에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20세기는 민중의 세기라고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중의 힘이 거세게 분출한 한 세기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요인중 하나로 급격한 도시화를 들 수 있다. 1,2차 산업혁명의 결과 고향을 상실한 이름없는 사람들이 도시로 도시로 몰려들었다. 그 밀집한 대중사회의 특성 중 하나가 바로 집단주의 성향이다. 나의 욕망과 불만이 곧 우리의 욕망이자 불만으로 집단화하는 것이다. 거기에 매스 미디어의 눈부신 발전이 이런 공유화를 빠른 속도로 확산시킨다. 개개인은 약하지만 어떤 계기가 주어져 뭉치게 되면 그 힘은 무섭다. 이것이 피플 파워의 본질이다.

인권탄압이든 부정부패든 불의와 비리가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삶이 고달파지면 민심은 흔들린다. 그럴 때 권력이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힘으로 억누르고 막으려 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특히 80년대 동아시아를 휩쓴 민주화운동의 열기 속에서도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던 곳이 인도네시아였다. 어쩌면 금세기 마지막 피플 파워의 승리일 것도 같은 자카르타의 5월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민중의 힘이 대단함을 실감하면서도 그러나 한가닥 안타까움은 있다. 사태전개과정에서 돌출한 일부 폭도들의 볼썽사나운 일탈행위는 의거의 순수성을 깎아내렸다. 박탈감의 발로라고 해도 큰 흠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망자 5백여명의 대부분은 약탈 방화에서 비롯된 어처구니없는 희생자들이라고 한다. 뒤늦게 이성을 되찾아 평화적 시위로 전환하기는 했지만 그런 불미스러운 일은 없었어야 했다.

▼ 약탈-방화로 순수성 훼손 ▼

거기에 비하면 우리의 민중항쟁사는 참으로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일제(日帝)에 항거한 비폭력 3·1운동으로부터 4·19 5·18 6·10항쟁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으면서도 결코 순수성을 잃지 않았다. 딴눈을 팔지 않았다. 얼마나 사려깊고 분별력 있는 국민인가. IMF관리체제라는 총체적 국난의 시기를 맞아 다시한번 그 분별력과 저력을 뭉치고 힘을 합쳐 이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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