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육정수/의원 歲費인상 몰염치

  • 입력 1998년 5월 16일 19시 58분


의회민주주의의 원조(元祖)격인 영국에선 국회의원이 원래 명예직이었다. 보수가 없다가 1913년에야 세비(歲費)제도가 생겼다. 당시 로이드 조지 재무장관의 제안설명. “국가에 봉사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봉직기간중 쾌적하고 명예롭고 동시에 사치스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수당을 줘야 한다.” 그 ‘쾌적하고 명예롭고 사치스럽지 않은 생활’의 기준은 의회 아닌 제삼의 기관이 정하게 했다.

▼우리의 경우 이런 추상적 기준이나마 없다. 회기(會期) 마지막날 국회 스스로 기습인상해버리면 그만인 게 오랜 행태다. 이번 임시국회도 마지막날 올해보다 18.2%나 올린 내년도 자체 예산안을 운영위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특히 지난해말 IMF사태를 맞아 의원들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월 1백80만원으로 줄였던 입법활동비를 2백35만원으로 원상회복키로 한 것이 논란거리다. 명절휴가비 체력단련비 해외연수비는 또 뭔가.

▼직장에서 겨우 살아남은 근로자도 봉급이 뭉텅뭉텅 깎이는 요즘이다. 고개 숙인 수많은 해고 근로자들은 노숙을 하며 절망의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가족이 함께 세상을 등지는 비극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때 국민대표라는 의원들이 다급한 민생을 외면하고 정쟁(政爭)만 일삼는 것도 모자라 돈이나 챙기려 들다니 낯 두껍고 염치없다. 입법활동비는 일하라고 주는 돈이다.

▼이번 국회는 정족수조차 제대로 못채운 텅빈 국회였다. 그러면서 일을 더 하겠다고 4급상당 보좌관을 한명씩 늘려 57억원을 쓰겠다는 것도 웃음거리다. 책은 읽지도 않으면서 책 살 돈만 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적용해 세비를 깎아도 시원찮다는 마당이다. 일은 하지 않고 돈만 챙긴다면 ‘의비(議匪)’가 아니고 뭔가.

〈육정수 논설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