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돋보기 답사]석빙고 그 차가움의 신비

  • 입력 1998년 5월 12일 07시 08분


수백년전 한여름에도 완벽하게 얼음을 저장했던 석빙고(石氷庫). 매년 2월말 강가에서 얼음(두께 14㎝ 이상)을 잘라내 저장한 뒤 6월부터 10월까지 수시로 그 얼음을 다시 꺼내 더위를 물리쳤던 선조들. 석빙고가 한여름 무더위를 견딜 수 있었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는 6개. 모두 18세기에 제작됐고 경북 경주, 경남 창녕 등 경상도지방에 몰려 있다. 반(半)지하에 내부 길이 12m, 폭 5m, 높이 5m 내외. 조선시대 한양에도 동빙고 서빙고가 있었으나 목빙고(木氷庫)였던 탓에 다 사라져버렸다.

석빙고의 얼음 저장은 두 단계로 나뉜다. 얼음 저장에 앞서 겨울 내내 내부를 냉각시키는 단계와 얼음을 넣은 뒤 7,8개월 동안 차갑게 유지하는 단계.

석빙고 내부를 미리 차갑게 만들어놓는 것은 얼음 저장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작업. 공성훈 계명대교수(건축학)의 측정에 따르면 경주 석빙고의 겨울철 내부 온도는 평균 영하0.5도∼영상2도. 보통 지하실 내부가 15도 안팎이라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석빙고 내부가 얼마나 차가운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왜 이렇게 냉각이 잘 되었을까. 석빙고 출입문 옆에 세로로 붙어 있는 날개벽 덕분이다. 겨울 찬바람은 이 날개벽에 부딪히면서 소용돌이로 변하고 그로 인해 더욱 빠르고 힘차게 내부 깊은 곳까지 밀려들어간다.

다음은 얼음 저장 이후.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얼음은 정말 녹지 않았을까. 물론 녹기는 했지만 미미한 정도였다. 어떻게 찬 기운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절묘한 천장 구조를 살펴 보자. 화강암 천장은 1∼2m의 간격을 두고 4,5개의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다. 각각의 아치형 천장 사이는 움푹 들어간 빈 공간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이 바로 비밀의 핵심이다. 내부의 더운 공기를 가두어 밖으로 빼내는 일종의 ‘에어포켓’인 셈.

얼음을 저장하고 나면 내부 공기는 미세하지만 조금씩 더워진다. 여름에 얼음을 꺼내기 위해 수시로 문을 열어야 하니 더욱 그러하다. 더운 공기는 위로 뜨고.

이 더운 공기는 뜨는 순간 에어포켓에 갇혀 꼼짝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에어포켓 위쪽의 환기구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했으니 그 완벽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내부 온도는 초여름에도 0도 안팎에 머물렀을 것으로 공교수는 추정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얼음에 치명적인 습기와 물을 제거하기 위한 바닥 배수로, 빗물 침수를 막기 위한 석회와 진흙 방수층, 얼음과 벽 천장 사이에 채워 넣는 밀짚 왕겨 톱밥 등의 단열재, 햇빛을 흐트러뜨려 열 전달을 방해하는 외부의 잔디 등등.

그러나 이 완벽함도 겨울 날씨가 추워야만 빛이 난다. 얼음이 제대로 얼지 않으면 석빙고는 무용지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겨울 날씨가 포근할 때면 추위를 기원하는 기한제(祈寒祭)를 올리곤 했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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