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현재/경제난 극복과 각주체의 몫

  • 입력 1998년 5월 7일 20시 05분


점진적 변화를 특징으로 하는 경제의 기본 생리와 달리 한국경제는 고율성장가도를 질주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정책, 기업의 경영방식, 국민의 소비풍토 등 정리 정돈돼야 할 것들이 그대로 남겨진 채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각 경제주체의 많은 부정적 타성이 쌓여온 것이 사실이다.

누적돼온, 마땅히 제거 조정돼야 할 것들이 국내외 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의해 더 감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닥친 것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난국이라 할 것이다.

▼ 정책투명-일관성 절실 ▼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강력한 권고내용이 부분적으로는 한국의 경제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동안 바로 우리 스스로가 제기해온 문제들이다. 그것들은 고도성장에 편승해 그 실천을 게을리했거나 미뤄온 것들이어서 더욱 안타깝다.

정부는 정책결정에 있어 타당성과 투명성 그리고 일관성에 대한 검증을 엄밀하게 해야만 한다. 지난 정부의 경제실정(失政)에 대한 책임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그 내용도 바로 정책의 타당성 투명성 일관성 여부 문제로 귀착된다. 후속자에 의해 교훈화되고 극복돼야 할 것들이 오히려 그대로 답습되는 사례를 빈번하게 보아온 터여서 이 점을 출범 초기의 새 정부에 특히 당부하고 싶다.

외국 투자자들이 한국 투자를 주저하는 이유로 한국은 소급입법을 할 수 있는 나라, 정책변경이 잦은 나라, 외국인으로서 노무관리가 어려운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한다고 한다. 물론 이는 한국사정을 너무 단순화해 인식하고 있는 측면도 있기는 하나 정책적으로 충분히 음미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외국인들이 그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한 고금리를 추구하는 단기자금의 유입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 기업성을 전제로 한 투자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기업 구조조정이라는 정책 과제는 금융부문의 조속한 구조 관행 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금융개혁이 이뤄지고 자율성이 확보되며 공정거래가 엄격히 독려된다면 자동적으로 정부와 금융부문의 지도성이 강화돼 기업은 그 틀안에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에 의해 구조혁신 경영혁신 기술혁신을 해나가게 될 것이다.

또한 각종 실업대책은 일시적 사회적 의의는 있으나 근본적 경제적 의의는 적다. 궁극적으로 고용문제는 역시 산업활성화정책의 적극적 전개에 의해 산업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어려운 여건이지만 한국 산업구조의 특성으로 보아 특히 수출산업이 살아나야만 장기적으로 고용증대와 외환안정을 기할 수 있다.

기업은 현재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체질개선의 희귀한 기회를 맞은 셈이다. 비교우위가 열등하거나 진부한 부문의 과감한 도태 이양, 대기업보유 중소기업적성 기업의 이양, 대중소기업간의 피라미드체제로부터 네트워크 체제로의 이행, 오너형경영으로부터 경영자형 경영으로의 이행, 업종 전문화와 재무구조의 강화 등은 시급한 기업혁신과제다. 노조는 기업과 근로자의 공동이익 확대를 위한 새로운 활동 영역을 탐색하며 기업발전을 위한 지혜를 모아나가기를 기대한다.

▼ 실업 장기대책 세울때 ▼

일반 국민의 경우 소비의 불가역성(不可逆性)때문에 거품경제의 소비풍토를 일시에 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그러나 근검절약과 저축증대의 필요성이 개발초기와 다른 차원에서 절실하게 요구된다. 현단계에서 그것은 바로 금융부문의 자금공급능력 확대, 통화안정, 외환안정의 길로 이어진다. 한편 쇼비니즘적 소비자 자세 역시 국제적 개방사회에서는 통용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한다.

벌써 IMF사태의 긴장감이 해이해진 분위기라고 우려하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역사상 많은 국난이 국운에 의해 극복돼 왔다는 운명론과도 같은 낙관론도 더러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제문제만은 엄격한 투입에 의한 산출, 노력에 의한 결실이 있는, 에누리 없는 인과논리를 지니고 있음을 경제난국 극복의 논리로서 강조하고 싶다.

이현재<학술원회장·전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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