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돋보기 답사]금동미륵 반가상

  • 입력 1998년 4월 14일 08시 09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웃음짓고 살았을까. 이름하여 ‘한국의 미소’. 여기 파안대소(破顔大笑)가 있고 수줍은 듯한 감춤의 미소가 있다. 속세를 초월한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미소가 있는가 하면 여인네의 교태 어린 웃음도 있다.

우리 문화유산에 나타난 한국 최고의 미소는 단연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78호·삼국시대·국립중앙박물관). 원만하고 결 고운 얼굴 선을 타고 눈매와 입가로 번져가는 고요하고 그윽한 미소.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진리와 영생을 깨우친 깨달음의 미소. 인간사의 번잡함을 초월한, 선악(善惡) 미추(美醜) 애증(愛憎)을 넘어선 영원의 미소. 바로 종교적 철학적인 신비의 미소다.

이 미소는 그래서 찰나적이거나 즉흥적이지 않다. 여운은 길고 감동은 깊다. 최순우 전국립중앙박물관장의 설명. “슬픈가 하면 슬프지 않고 미소짓는가 하면 거기 준엄한 기운이 깃들여 있다. 슬프다 너그럽다 슬기롭다 하는 인간의 감정이 하나의 화음으로 빚어진 미소다.”

국보78호 반가사유상과 함께 한국 불상의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금동미륵반가사유상’(국보 83호·삼국시대·국립중앙박물관). 이 역시 침묵의 미소, 영원의 미소, 신비의 미소다. 그러나 국보78호에 비해 깊이나 그윽함이 다소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

‘서산 마애삼존불’(국보84호·백제)엔 순수의 미소가 있다. 가운데 여래상의 미소는 우선 친근하고 편안하다. 네모진 얼굴에 큰 눈, 살짝 벌린 입에는 해맑고 복스러운 미소가 가득하다. 마치 어린 아이의 미소 같다. 수더분하고 털털하지만 순수와 고풍(古風)의 멋이 살아 숨쉬는 미소. 1천4백년전 백제인은 그렇게 웃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신라·국립경주박물관)는 한국적 미소의 전형. 얼굴엔 일체의 꾸밈이나 과장이 없다. 살짝 부풀어 오른 두 뺨, 지그시 감긴 눈, 쓱 올라간 입술이야말로 친근하고 일상적인 우리의 미소. 어린 시절 따스하게 감싸 주던 누나의 웃는 얼굴이다. 미인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얼굴에서 어쩌면 저렇게 담백한 미소가 나올 수 있을까.

웃음을 논하는데 ‘안동 하회탈’(국보121호·고려말∼조선초·국립중앙박물관)이 빠질 리 없다. 익살과 해학의 미소, 하회탈. 이중 ‘양반탈’의 웃음엔 여유와 낙관이 넘쳐흐른다. 양반님네를 풍자하고 야유하면서도 모든 갈등을 녹여내는 넉넉함과 담담함. 우리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유쾌한 웃음, 한바탕의 파안대소다.

교태 넘치는 눈웃음도 있다. 하회탈중 ‘부네탈’(기생탈)은 양반을 유혹하는 은밀한 미소. 분 칠한 입술, 연지 곤지 바른 이마와 양 볼, 꽉 다문 입과 가느다란 실눈엔 요염함이 그득하다. 그럼에도 천박함에 떨어지지 않는 절제가 있어 더욱 돋보인다.

인간적인 미소 하나 더. ‘경주 황룡사 치미’(기와지붕 용마루 양 끝에 얹는 장식기와·신라·국립경주박물관)에 새겨진 할머니 할아버지의 미소를 보자. 진흙덩이 위에 손가락을 쿡쿡 눌러가며 단숨에 처리한 얼굴상. 그런데도 그 미소는 천진스럽고 낭만적이다. 얼굴 윤곽선도 없이 눈 코 입만으로 미소를 만들어낸 절묘함. 저 신라인의 손 끝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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