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차웅/현대판 노예 「앵벌이」

  • 입력 1998년 3월 27일 19시 26분


▼27일자 동아일보 사회면의 ‘앵벌이노예’ 매매기사를 읽고 놀라움과 함께 외국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당장 외국 시민단체나 인권기관이 규탄성명이라도 낼까봐 신경이 쓰인다. 미혼모들이 포기한 영아를 돈으로 사들여 키워 ‘앵벌이노예’로 부린 ‘가짜 부모들’도 그렇지만 명색이 산부인과 의사가 어린 생명을 앵벌이조직에 팔아넘겼다니 말문이 막힌다. 천인공노할 가증스런 범죄일 뿐만 아니라 인간모독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인권보호망에 큰 구멍이 뚫렸음을 보여준다. 각 병원과 경찰은 미혼모가 포기한 영아나 기아(棄兒)를 입양기관이나 보호시설에 넘기도록 돼 있다. 그런데도 문제의 개업의는 마치 가축이나 애완동물 팔아 넘기듯 영아를 앵벌이조직에 팔아 넘겼다. 이보다 더한 범죄가 있을까. 감독기관인 보건복지부와 의협 등에 대한 엄중한 책임추궁이 있어야 한다.

▼경찰도 책임이 크다. 앵벌이는 공개된 아동학대요 아동인권유린이며 아동노동력 착취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명백한 범죄를 지금까지 못본 체 해왔다. ‘지하철범죄수사대’가 뭘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이 매일 밤 벌이고 있는 음주운전단속에 쏟는 노력의 1백분의 1만 동원해도 앵벌이범죄조직은 짧은 시간내 완전 소탕이 가능할 것이다.

▼이번 일은 우리 사회의 책임이기도 하다. 풋풋하게 자라야 할 어린이들이 노예처럼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도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 그 많은 시민단체와 인권단체들이 앵벌이에 대해서는 왜 침묵해왔는지도 궁금하다. 외국에서는 어린이의 노동력을 착취해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인도산(産) 카펫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차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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