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사이언스 ⑧]디스토피아류 영화

  • 입력 1998년 3월 11일 0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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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위기를 다룬 ‘화려한 음모(81년작·원제 Rollover)’라는 미국 영화를 보면 족집게처럼 정확한 상상력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환율이 급등하고 주가가 폭락한다. 대량 실직 또한 예외없이 등장한다.

‘화려한 음모’는 원래 달러 가치 폭락에 따른 세계 경제의 연쇄적인 파탄을 그린 영화다. 공황 상태에서 시위가 끊이지 않는 모습은 지금의 인도네시아 사정과 똑같다.

이런 상황들이 묘사되면서 뉴스에 제일 먼저 서울의 모습이 나온다. 아마 80년대 초의 혼란스러웠던 당시 우리의 실상을 인용한 듯하다.

암울하고 절망적인 사회를 의미하는 말인 ‘디스토피아’.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말이다. 미래 사회를 다룬 SF영화에는 유토피아보다 디스토피아를 묘사한 작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라는 의미가 크지만 영화제작자 입장에서 보면 폐허를 배경으로 삼는 게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적게 든다는 이점도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미래를 초래하는 요인도 가지가지다. ‘터미네이터’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말살하고 ‘핸드메이드’에서는 환경 오염 때문에 여성이 모두 불임이 된다. 또 유명한 ‘매드 맥스’ 시리즈는 석유 자원의 고갈로 폭력이 난무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또 ‘최후의 수호자’는 인구 폭발로 사람들이 건물의 계단에 모여사는 21세기의 뉴욕을 묘사하고 있다. ‘바이러스’에서는 제목 그대로 치명적인 바이러스 때문에 남극을 제외한 전 지구의 인류가 멸망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바이러스는 군사용으로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 심지어는 ‘인디펜던스 데이’처럼 외계인이 침략해 인류가 절대적인 위기를 맞기도 한다. 또 ‘지구대참사’에서 볼 수 있듯이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도 파국은 피할 수 없다. 이미 공룡이 그렇게 멸종되었다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처음에 언급한 영화 ‘화려한 음모’의 가치는 이런 SF영화와는 다른데 있다.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비현실적이지만 SF의 세계에서 익숙한(?) 재앙이 아니라 ‘금융재정적 디스토피아’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가능성을 예측해낸 데 있다. SF적 상상력은 이처럼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안목을 필요로 한다.

박상준(SF해설가·cosmo@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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