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아, 옛날이여』

  • 입력 1998년 1월 30일 19시 59분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 이후 처음 맞은 올해 설 풍경은 옛날과 많이 달랐다. 눈에 띄게 줄어든 귀성인파와 선물꾸러미 세뱃돈에 이르기까지 거품이 많이 빠졌다. 체면치레 허장성세가 걷히고 비교적 알뜰하게 명절을 보낸 것은 IMF한파(寒波)가 가져다준 순기능이랄 수 있지만 자식과 부모의 도리를 못다한 아쉬움에 우울하게 연휴를 보낸 사람들이 적지 않다. ▼ 합리주의로 체질 전환해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취임초 “가진 자가 고통스러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다른 모든 공약은 5년사이 기이하게도 정반대로 나타났지만 이 다짐만은 초과달성하고 있는 것 같다. 가진 자뿐 아니라 못가진 자까지 온 국민이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는 오늘이다. IMF한파에 “아, 옛날이여”를 되뇌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구(舊)여당을 비롯, 흥청거리던 기득권세력들이다. 잘 나가던 지난날이 향수처럼 그립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나 기세좋게 잘 나가던 그 때가 오히려 무언가 크게 잘못돼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작 깨달았어야 했다. 현기증나게 돌아가는 바깥 세상을 재빨리 눈치채고 조금만 일찍 대처했더라면 이 지경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회한에 잠겨본들 부질없는 일이다. 주제파악이 너무 늦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국은 단순히 경제적 위기 때문만은 아니다. 합리성 투명성 효율성의 결여라는 사회 전반의 구조적 위기가 겹친 것이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일반의 관행과 의식구조까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위기극복은 어렵다. 또 설혹 지금의 IMF터널을 용케 벗어난다 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같은 위기상황이 재발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무엇보다 인류보편적인 합리주의로 체질을 바꿔나가는 일이 급하다. 서구적 합리주의의 대표적 관행인 더치페이만 해도 그렇다. 동양적 정서에 맞지 않는 각박한 서양풍속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IMF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서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IMF위탁관리라는 수모를 겪고서야 정신들이 번쩍 드는 모양이다.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 쓰자는 ‘아나바다’운동만 해도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정착한 지 오래다. 특히 영국의 경우 쓸 수 있는 물건은 못 하나라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불로소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힘들게 번 돈이라 가급적 바르게 쓰고 낭비하지 않으려는 측면도 있지만 번지르르한 새 것보다는 사람의 손때가 묻은 옛것일수록 더 값을 쳐주는 곳이다. 명문 이튼스쿨을 비롯,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는 교복과 양말 교과서 등을 후배에게 대물림해주는 전통이 살아 있고 30년된 낡은 구식 라디오를 계속 고쳐가며 쓰고 있는 가정들도 많다. 오이 수박 따위를 절반씩 잘라 파는 슈퍼마켓의 진열장에서도 영국식 검약과 합리주의를 볼 수 있다. 무작정 허리띠를 졸라맨다고 물론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소비억제로 인한 수요감퇴는 생산을 위축시켜 악성 불황을 부르게 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때문에 건전한 소비야 나무랄 수 없지만 분수모르고 펑펑 써대는 과시적인 생활습관만은 차제에 확실하게 고치고 넘어가야 한다. ▼ 「바른 소비」 풍토 정착시키자 정치 경제 사회 구석구석의 불합리와 낭비부터 걷어내야 한다는 데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다. 공감하고 개탄하는 목소리들은 높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당사자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자신은 예외인 것이다. 가해자는 없고 모두가 피해자라는 생각들 뿐이다. 더욱이 누가 봐도 수치스러운 과거를 두고 반성은 커녕 오히려 그리운 시절로 떠올리는 정서가 기득권층 일각에 남아 있는 한 새로운 내일은 기대하기 어렵다. 남중구(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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