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을 다시 쓰자/국내 폐지수집]폐지도 모으면 자원

  • 입력 1998년 1월 16일 20시 12분


“저, 헌 신문지좀 없습니까.” 서울 강북구 수유6동 극동아파트에서 부녀회 활동을 하는 허영자(許英子·45)씨는 부쩍 잦아진 이런 전화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신문은 신문끼리, 우유팩은 우유팩끼리 애써 분류작업을 해 폐지를 내놓아도 집채만큼 쌓이도록 가져가지 않았던 게 얼마전의 일이다. 요즘은 폐지 수거업체나 폐지 재활용업체에서 절박한 목소리로 하루에도 수십통씩 전화를 걸어온다. “종이가 귀해진 덕분에 폐지값도 올랐어요. 우리 아파트에서 한달이면 4t정도 나오는데 40만원을 받았거든요. 이번 달에는 70만원은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것 같네요.”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사는 주부 김선희(金善姬·35)씨는 한결 깨끗해진 동네 골목길이 놀랍기만 하다. 신문이나 광고물을 묶어 내다놓기가 무섭게 없어진다. “누가 가져가는지 몰라도 내다놓은 종이 꾸러미가 없어지는데 30분도 안 걸려요. 예전엔 며칠이 지나도록 가져가지 않아 종이가 날리고 먼지가 쌓여 골목이 지저분했었는데….” 외환위기 이후 종이가 없어 난리들이다. 타산이 안 맞는다고 가져가지 않던 헌 종이를 금덩이 보듯 모셔가기 바쁘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종이값이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환경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수입 신문용지 가격은 지난해 6월 t당 11만1천원에서 이달에는 15만8천원으로 42.3%가 올랐다. 같은 기간 수입 펄프가격도 44만2천원에서 무려 79.9% 오른 79만5천원에 거래되고 있다.국내 신문용지 가격도 지난해 6월 9만5천원에서 13만원으로 36.8% 오른 상태. 한국자원재생공사는 “지난해 12월부터 제지업체들의 신용장 개설이 중단되다시피해 올 3월까지 필요한 1백60만t 가운데 30만t 이상이 모자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재활용 제지업계는 원자재 확보 비상이 걸렸다. 부림제지는 우유팩이나 지하철표 등 국내 폐지만으로 두루마리 재생화장지를 생산하는 대표적 재생지 이용업체.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판매량이 20% 증가할 정도로 호황을 맞고 있지만 종이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홍봉희(洪鳳憙)상무는 “현재 재고분이 10일분밖에 남지 않았다”며 “덩치큰 회사에서 선금을 주고 폐지를 수거해가는 바람에 우리같이 작은 회사들은 더욱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스티로폼의 대용품인 종이 완충 포장재를 만드는 ㈜오성사도 수입의존도가 높은 스티로폼의 가격이 뛰는 바람에 모처럼 주문이 밀리고 있지만 종이부족으로 물량을 대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는 이처럼 심각한 폐지 부족난을 해결하기 위해 2월을 ‘폐지 집중 수거의 달’로 정하고 ‘숨어 있는 종이 모으기’운동을 펼친다. 외화 빚을 갚기 위해 금을 모으듯 다 읽은 소설책, 철지난 잡지, 누렇게 바랜 신문지 등 종이란 종이는 모두 모아보겠다는 계획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단독주택가의대면(對面)수거확대 △대형사무실의분리수거의무화 △전국4대 권역에재활용 판매지원센터 설치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진영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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