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여성 우선해고 안될 말

  • 입력 1998년 1월 6일 20시 19분


요즘 각 직장의 분위기가 살벌하기 그지없다. 기업마다 인원감축 문제가 구체화되면서 직장인들은 해고대상이 누구일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누가 해고자 명단에 올랐다더라’ ‘전체의 몇 %를 자른다더라’ 하는 소문이 나도는 상황에서 일손도 제대로 잡힐 리 없다. 회사측의 입장도 난감하다. 감원을 하긴 해야겠는데 누구를 어떤 기준으로 해고해야 할지 고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대량감원의 소용돌이 속에서 해고 1순위로 여성직원들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미 인원감축을 끝낸 기업 중에는 실제로 맞벌이 기혼여성이나 근무연수가 오래된 여직원에게 우선적으로 사표를 받아낸 사례가 적지 않았다. 누군가가 배를 떠나주어야 침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기업들의 딱한 형편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 개개인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직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여성 우선해고에 대한 회사측과 동료 남자직원들의 설명은 구차스럽지만 긴박한 면도 있다. 남성들은 가정내에서의 경제적 책임이 여성보다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성쪽이 양보해야 한다는 논리다. 또 맞벌이여성은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혼자 버는 남성들은 생계가 막막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설명은 결국 한국식 온정주의나 남성중심 사회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현재 시급히 요청되는 기업 구조조정의 본뜻은 불필요한 거품이나 군살을 빼고 조직의 효율과 생산성을 극대화하자는 데 있다. 그 첫 단계에 해당하는 인력감축에서부터 합리성과 객관성이 배제된 채 인정에 호소하는 풍토가 자리잡는다면 기업의 경쟁력 확보는 요원하다. 여성취업자들이 단순직종에 많이 몰려 있는 탓에 정리해고에서 우선순위에 오르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최근 전문직 여성의 숫자가 크게 늘면서 그 역할도 날로 증대하고 있는 추세다. 더구나 정보가 중시되는 미래사회에는 섬세한 성격에 언어능력 등에서 강점을 지닌 여성고급인력이 더욱 효용가치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여기에 여성근로자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0%에 불과한 저임금이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여성취업을 확대하는 편이 국가적으로도 이익이다. 어려울 때일수록 원칙은 충실히 지켜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은 요인 중 하나가 각종 불합리한 관행이었다. 여성취업자에게 무조건 희생을 강요하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이제 나라 전체가 새 가치기준으로 거듭나야 할 마당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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