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권교체기의 공직기강

  • 입력 1997년 12월 12일 20시 16분


김영삼(金泳三)정권 초기 서슬퍼런 사정 칼날 아래 일시 수그러지는 듯했던 뇌물 범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잇따라 터져나오는 공무원 비리는 정권교체기를 틈타 공직기강이 크게 흐트러져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로공사 및 관리공단 간부들은 공사발주와 감독을 둘러싸고 억대의 뇌물을 받았고 의정부경찰서 교통경찰관들은 교통법규 위반자들이 납부한 범칙금을 개인 호주머니에 넣었다. 며칠 전에는 현직 검사가 업자들과 어울려 수천만원대 도박판을 벌이다 경찰에 체포되는 어이없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떠는 국민은 일부 공무원들의 한심한 작태에 분노할 기력마저 잃어버렸다. 관급공사 비리는 부실공사를 부르는 주범이다. 기업의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심화하고 성실한 기업인들의 의지를 꺾는 범죄이기도 하다. 부실공사로 인한 숱한 대형사고와 관련 공직자들의 처벌이 반복됐음에도 불구하고 건설업자와 발주 및 감독공무원의 부패고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이번 도공간부 수뢰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기업들이 뇌물없이는 공사를 따서 원활하게 수행하기 어려운 풍토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현 정부가 요란한 사정구호를 내걸고서도 공무원 비리를 뿌리뽑지 못한 것은 사정이 지속적 체계적인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지 못하고 그때그때 여론 잠재우기나 인기만을 위해 즉흥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뇌물을 주는 수법만 교묘해졌다.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추적을 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채워진 사과상자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통장 뇌물이 쓰여졌다. 뇌물공여자 이름으로 실명통장을 만들어 비밀번호와 함께 제공하는 수법은 부피 큰 현금의 운반과 보관의 불편을 일거에 해결하는 신종 수법이다. 해외로 도피한 고속도로관리공단 사장 집에서 건설업체 대표로부터 받은 1억원짜리 통장 외에도 30여개의 통장이 더 발견됐다니 철저한 수사를 통해 뇌물통장을 가려내야 할 것이다. 지속적인 사정 프로그램을 추진하지 못한 행정부 못지않게 사법부도 상당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수뢰 공직자들은 구속될 때만 요란하고 법에 정해진 형기를 채우는 사람이 드물다. 재판에 회부된 후에는 대부분 보석 집행유예 등으로 석방된다. 죄값에 따른 엄정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관료사회의 부패구조를 바로잡기 어렵다. 나라사정이 급박한 정권교체기에 부패와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공직자들을 그대로 두고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 군살 빼기에 앞서 썩은 살부터 도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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