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봉평]메밀꽃 들녘… 새하얀 사연…

입력 1997-09-11 07:52수정 2009-09-2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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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아무래도 달빛 아래서 봐야 황홀하다. 한낮에 보는 꽃들은 어쩐지 측은하다. 한번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보름날 밤 「소금을 뿌려 놓은 듯」 한 산허리 메밀꽃밭 사이 길을 걸어보라. 강원도 평창의 봉평땅.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가산 이효석이 태어 났던 곳. 올해도 이효석의 생가로 올라가는 1.5㎞의 길 주변엔 메밀꽃이 한창이다. 소설의 무대 물레방앗간 주위에서부터 시작되는 메밀꽃밭은 가산 생가에 이르기까지 홀연히 나타났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문득 눈길을 멀리하면 저멀리 산허리에 하얀 구름띠처럼 걸쳐 있다가 돌연 길가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꽃 틈새로 언뜻언뜻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사이엔 벼가 누렇게 익은 논들이 황소처럼 누워 있다. 메밀꽃은 들꽃처럼 소박하다. 꼭 갓 시집 온 수줍은 시골 새댁 같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여중학생은 『안개꽃 같다』고 말했다. 당일치기로 봉평의 메밀꽃밭을 보려거든 아예 안가는 게 좋다. 적어도 물레방앗간부터 가산 생가터까지 1.5㎞쯤 걸을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사람도 마찬가지. 대부분 그 길을 자동차로 먼지를 내면서 지나친다. 가산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무렵」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가는 것도 기본. 한낮의 가산 생가 가는 길은 자동차와 사람으로 번잡스럽기 짝이 없다. 자동차는 가산의 생가가 있었던 곳에까지 들어가 주차장을 만든다. 답답하다. 가산의 생가터엔 홍종률씨 일가가 다시 집을 짓고 살고 있다. 메밀부침에 술도 판다. 뜻있는 사람들은 『이효석 메밀 주막』이라며 혀를 찬다. 가산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한국문인협회에서 세운 기념표석만 한쪽에 덩그러니 묻혀 있다. 평창군청의 장영진 학예연구사는 『집을 매입할 만한 예산이 없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자동차를 마당까지 끌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할말 없다. 문학기행은 느낌이 먼저다』고 말했다. 살다보면 때로는 슬픔도 힘이 된다. 봉평의 달빛은 여전히 흐뭇하다. 산허리는 온통은 아니지만 듬성듬성 하얀 메밀꽃밭이 그대로 펼쳐져 있다.봉평의 메밀꽃은 서리가 내리는 9월말께면 시든다. 인간의 삶도 시든다. 남자는 노새처럼 죽도록 일하다가 지치고 여자는 병속의 꽃처럼 세월에 시든다.어떤가. 한가위 대보름 연휴. 한번쯤 황홀한 달빛에 비친 메밀꽃밭 사이를 걷고 싶지 아니한가. 거기가 꼭 봉평땅이 아니면 어떤가. 〈봉평〓김화성기자〉 ▼ 봉평 가는길 ▼ 서울 상봉터미널이나 동서울터미널에서 장평행 버스가 20,30분 간격으로 있다. 장평에서는 봉평행 완행버스를 타면 된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서 장평까지 2시간30분, 장평서 봉평까지 15분이면 된다. 승용차로 갈 때는 영동고속도로에서 장평IC로 진입. 봉평 주변에는 볼만한 곳이 많다. 조선시대 명필 양사언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 팔석정,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잉태했다는 판관대, 율곡의 영정을 모신 봉산서재 등이 바로 그곳. 온갖 향기나는 풀을 재배하는 허브나라 농원도 가볼만하다. 종합리조트타운 피닉스 파크도 봉평서 멀지 않다. ▼ 먹을거리 ▼ 봉평 음식점은 어딜가나 메밀요리 천지다. 메밀부침개 메밀막국수 메밀칼국수 메밀수제비 메밀묵 메밀막걸리 메밀총떡 등. 그러나 이중에서도 메밀막국수가 기본이다. 메밀막국수집에서 오래된 집으로는 현대식당(0374―32―0314)과 진미식당(0374―32―0242). 현대식당은 무려 36년의 손맛을 자랑한다. 봉평막국수(0374―32―9622)와 두레마을(0374―32―0074)도 오래 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많이 찾는 곳이다. 현대식당의 막국수는 소금 마늘 참깨 식초 양파 조선간장 등의 양념만으로 육수를 만드는 게 특징. 맛이 담백하고 「곰삭은 단맛」이 입안에 살짝 걸치는 게 일품이다. 밑반찬도 여름엔 무공해 고랭지 열무김치가 나오고 겨울엔 쌉싸름한 갓김치가 나온다. 메밀총떡은 두께가 어린아이 손목만하고 길이가 20∼30㎝쯤되는 「김밥형 메밀만두」다. 총떡 안에는 만두속 같이 쇠고기 김치 등에 갖은 양념을 다져 넣는다. 아무래도 평창읍내에 나가야 맛 볼 수 있다.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하다. 햄버거에 비길 바가 아니다. 〈김화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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