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공포에 떨고있을 초롱이의 눈빛을 생각하며

  • 입력 1997년 9월 4일 20시 07분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1927년 세계 최초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한 미국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는 몇 년 뒤 두살난 아들을 유괴사건으로 잃는 고통을 겪었다. 대서양 횡단 이후 일약 저명인사가 된 그는 32년 뉴저지주 별장에서 주말을 보내던 중 유괴범이 몰래 침입, 잠자고 있던 어린 아들을 데려갔다. 범인이 거액을 요구해오자 린드버그는 약속장소에서 돈을 전달했으나 아들은 결국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해지자 당시 감옥에 있던 마피아 두목 알 카포네는 자신을 내보내 주면 아기를 찾아 주겠다는 제의를 하기도 했다. 국민적 영웅에서 하루 아침에 비극의 주인공이 된 그는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유괴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하고 36년 독일로 이주했다. 또 말년에는 하와이에서 조용히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린드버그와 가족이 겪었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어린이유괴는 어린 생명을 볼모로 몸값을 요구하고 피해자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될 범죄다. 각국에서 사형 등으로 엄하게 처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첨단과학의 발달로 유괴범이 범죄에 성공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례행사처럼 여덟살난 여자어린이가 유괴되는 사건이 서울에서 일어났다. ▼피해자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천진난만한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면서 이런 사건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지 분노가 앞선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의 왜곡된 단면인지, 아니면 돈가진 사람들에 대한 「증오 범죄」의 한 양상인지 몰라도 유괴범죄는 이제 뿌리뽑아야 한다. 무엇보다 어딘가에서 공포에 떨고 있을 어린 생명이 무사히 부모품에 돌아오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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